조선 중기 문신인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月)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어떤 이는 고산(孤山)의 오우가에 빗대 우리 사회 '리더의 자격'을 논하기도 했다. 물(水)은 조직 구성원과 물 흐르듯 소통하는 능력과 열린 마음, 즉 '소통과 통섭'을 상징한다는 것. 소나무(松)는 청렴과 관련 자신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있는 용기, 대나무(竹)는 사욕을 부리지 않는 곧은 절개다. 또 바위(石)는 강단과 소신을 가지고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달(月)은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의 적절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이성적인 머리를 뜻한다.
이 모두의 요건을 갖춘 인물을 구하기란, 감히 바랄 수 없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그 자체다. 그렇다고 한 둘의 조건을 구비한 사람을 찾는 것도 그리 쉽지가 않다.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自畵像)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을 맞은 25일, 이번엔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전격 자진 사퇴했다. 탈세와 해외 비자금계좌 운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한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11번째 낙마자(落馬者)다. 취임 직전 지명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했다. 청문회 후 막판까지 버티던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는 '비리 의혹 백화점'이란 비난 속 끝내 물러났다. 김종훈(미래부 장관)·황철주(중소기업청장) 후보자와 김학의 법무부차관 내정자 등도 갖가지 이유로 줄줄이 사퇴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이 "인사 참사(慘事)라거나 오기와 오만으로 귀결된 한달"이라고 혹평을 해도 할말이 없게 됐다.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론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같은 결과 뒤엔 박 대통령의 '불통(不通)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보안을 앞세운 '밀봉 인사'와 '나홀로 인사'는 그 대표적 요인이다. 대통령 의중 살피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구멍난 청와대 인사시스템도 화(禍)를 키웠다. 이로 인해 어느새 박 대통령에겐 소통 부재 및 독단(獨斷)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다.
역대 정권의 첫 한달 지지율도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의 자료에 의하면 YS와 DJ의 취임 한달 지지율이 70%를 상회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44%로 꼴찌를 기록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란 구호가 무색해질 정도다.
문제는 이같은 부실(不實) 인선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늑장처리와 맞물리며 심각한 국정 공백(空白)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특히 청문회나 자진 사퇴 과정에서 드러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각종 비리는 국민들을 깊은 절망감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지난날의 '관행'으로 덮기엔 그들의 행태가 너무나 몰염치(沒廉恥)했기 때문이다.
'원칙과 신뢰'는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정부조직법과 인사 파동을 거치며 과연 무엇을 위한 원칙인지, 누구를 위한 신뢰인지가 불분명해졌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으로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제대로운 국정(國政)을 펴길 바란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