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4월, 제주땅엔 막 축제를 끝낸 벚꽃들이 바람에 풀풀 흩날리고 있다. 그리고 '미완(未完)의 4·3'도 무거운 세월을 머리에 이고 65번째 찾아왔다. 하지만 무슨 '죄'가 있어 그리 당당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인가. 울화가 치밀기보다는 슬픔부터 앞선다. 제주4·3은 결코 도민들의 '구걸' 대상도, 정부와의 '흥정거리'가 아닌데도….
수십년 동안 '금기(禁忌)의 역사'였던 제주4·3이 밝은 세상으로 나온 것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그해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4·3 청산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진상보고서가 발간되고 마침내 대통령(노무현)이 위령제에 참석해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를 하면서 제주도민들의 응어리진 가슴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MB정부가 들어서면서 4·3 해결을 위한 노력은 점차 시들해졌다. 숱한 요청에도 불구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5년동안 단 한번도 위령제(慰靈祭)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일부 극우세력의 4·3 흠집내기는 그나마 아물어가던 도민들의 마음마저 마구 헤집곤 했다.
MB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은 2012년 대선(大選)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이에 화답하듯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공약(公約)으로 내세웠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제주지역 유세에서 "4·3은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사건으로 그동안 정부의 관심이 있었지만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었다. 이어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국가 추모기념일 제정을 비롯 도민들의 아픔이 가실 때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도민들은 박 대통령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고, 해결의 첫 단추가 65주년을 맞는 4·3위령제 참석이 될 것으로 믿으며 손꼽아 기다려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은 올해 역시 무위(無爲)로 끝날 듯싶다. 1일 현재까지 위령제 참석은 물론 국가 추모기념일 제정 등 4·3과 관련한 그 어떤 대책도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悲劇)이라 일컬어진다. 희생된 규모만 해도 여느 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광주5·18이 228명, 거창사건이 934명인데 반해 제주4·3의 경우 정부 차원의 확인된 피해자만 1만5000명을 상회한다. 그것도 국가 공권력(公權力)에 의해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대다수다.
씨는 뿌린 자가 거두는 법이다. 4·3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의 한(恨)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다. 대내외의 환경 변화로 위령제 불참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국가 추모기념일 제정 등 4·3 해결과 관련 향후 추진방향이라도 밝혔어야 했다. '원칙과 신뢰'가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제주 사람들에게 4·3은 처절한 비극의 기억이자 너무나 고통스러운 역사다. 그리고 오늘의 '강정'에서 60여년 전 '4·3의 망령(妄靈)'을 다시금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상생(相生)이나 화합(和合)을 말하려면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긴 세월동안 여전히 '사월' 속에 갇혀 있는 제주를 하루빨리 '사월'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제주4·3을 '미완의 역사(歷史)'로 남길 셈인가.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