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에 맞선 지식인의 비밀결사

야만의 시대에 맞선 지식인의 비밀결사
신민회부터 조선건국동맹까지 '한국의 레지스탕스'
  • 입력 : 2013. 05.03(금) 00:00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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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야소 다로 부총리를 포함한 여야 의원 168명은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를 문제 삼자 아베 총리는 "국가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영령에 대해 존경과 숭배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두둔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태평양전쟁 전몰자 246만 명의 위패를 보관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국내 곳곳에도 이러한 신사를 세워 한국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해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다.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의 한국인 학생들은 '메이지 천황 탄생 기념식'에 동원됐다. 이날은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기도해 나라 잃은 설움을 더욱 크게 느낀 학생들은 귀가 중 흉기로 시비를 거는 일본인 학생들과 시내 곳곳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싸움은 동맹휴학운동 대중시위로 번졌으며, 그 중심에 성진회가 있었다.

신사 참배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이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행태에 반발하지만 일본은 입장을 고수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은 '대동아전쟁 종결의 조서'를 발표했지만 끝까지 '항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일본이 피해자인양 진실을 호도했다. 한국은 '도둑처럼 다가온 해방'을 수습하느라 오늘까지 청산하지 못한 한·일 관계사를 남겼다. 대표적인 문제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 역사 교과서 왜곡, 각료 야스쿠니 신사 참배다. 일본은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고 우익을 결집하기 위해 역사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근대사 속 최후의 항일 혁명가들이 바로 이런 상황을 우려했던 게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책에 등장하는 비밀결사들은 다음과 같다. 안창호를 중심으로 뭉친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박상진을 중심으로 모여 의협 투쟁을 열었던 대한광복회, 3·1만세운동 후 암살테러 전술을 본격화했던 의열단, 혁명을 꿈꿨던 조선공산당, 전남 광주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진회와 독서회 중앙부, 무장투쟁과 인민전선으로 맞섰던 조국광복회, 여운형을 중심으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조선건국동맹, 그리고 국내외 항일 혁명가들을 두루 섭렵해 독립운동 최고기관이 되고자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그들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던 조한성이 정리했다. 생각정원.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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