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席藁待罪)의 사전적 의미는 거적을 깔고 엎드려 윗사람의 처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옛 왕조(王朝)시대의 유산이지만 근래 들어서도 심심찮게 '석고대죄'가 목도되곤 했다.
지난 2004년 3월13일 새벽 국회에서도 석고대죄는 재연됐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국회본회의장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달콤했다. 탄핵 한달 뒤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원내(院內) 1당으로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무릎을 꿇었던 대다수의 의원들은 다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1년 8월11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투표율이 33.3%가 안돼 투표함을 개봉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직을 물러날 것이라며 석고대죄를 연상케하는 무릎을 꿇었다. 미처 거적을 준비하지 못해서인지 결과는 좋지 못했다. 서울시장직을 야권(박원순)에 넘겨줬다는 당내의 싸늘한 비판을 받으며 정치인으로서의 '큰 꿈'도 함께 접어야 했다.
'윤창중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청와대 대변인직 전격 경질로 잠잠해지리란 예상과는 달리 파문은 오히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인턴 여성의) 허리를 한차례 툭 치면서 격려했을 뿐 성추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남기 홍보수석이 귀국을 종용했다고 주장, 또 다른 '진실게임'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파장이 확산되자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의(辭意)를 표명했으며 허태열 비서실장도 사과를 하며 진화(鎭火)에 나섰다. 그럼에도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까지 13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다"며 직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이라며 '국격(國格) 훼손'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취임 이후 사실상 첫 '대국민 사과'로, 사태의 심각성을 그만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참담하게 느끼는 것은 고위 공직자들의 '수준' 문제다. '성추행 의혹'이라는 문제를 떠나 애초에 이런 일은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윤 전 대변인의 '불미스러운 일'은 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날 밤, 그것도 다음 날 오전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이라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일어났다. '청와대의 입'이란 사람이 그 역할을 망각한 채 인턴 여성을 불러 술을 마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잘못일 터인데 기자회견을 통해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아닐 수 없다.
이남기 홍보수석의 처신도 비판받을 만하다. 이 수석은 지난 10일 사과를 하며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했다. 국가적 망신으로 번진 사건을 두고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는 의식구조야말로 현 청와대의 실상을 짐작케 한다. '석고대죄'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해야 마땅한 일이다.
윤창중은 박근혜 대통령의 '1호 인사'이자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던 '불통(不通) 인사'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번 사건에서 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앞날도 암담할 뿐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