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의 정체성과 세계화 -1

제주문화의 정체성과 세계화 -1
  • 입력 : 2013. 06.18(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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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언론인클럽(회장 이문교)이 주최한 정책 세미나가 지난 14일 제주시 연동 더호텔에서 있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세미나의 주제는 '제주문화의 정체성과 세계화'였다. 세칭 문화의 시대에 이 주제를 정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정체성(正體性)'을 한 마디로 표현해 내기란 지극히 어렵다.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 또는 그 특성을 가진 존재'란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모호하다. '느낌'으론 다가오지만 이를 '실체'로 받아들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날 '제주문화의 정체성 전략'이란 내용으로 발제에 나선 송상일 선생(언론인·문학평론가)도 '정체성'에 대해 근원적(根源的)인 물음을 던졌다. "제주의 정체성, 그것에 준하는 제주적인 것,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걸까. 있다면 그것은 어떤 양태로 존재하는가"란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은근과 끈기'를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를 휩쓴 바 있는 '강남 스타일'의 신명은 은근과 끈기만 갖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국적인 것'은 막연한 느낌으로만 존재할 뿐, 막상 찾으려 들면 도망쳐 버리는 '없으면서도 있는' 혹은 '있으면서도 없는' 역설(逆說)적인 것이며, '제주다운 것' 역시 그럴 것이란 게 송 선생의 주장이다.

즉 정체성 탐구는 '어떤 실체'를 찾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 예컨대 서울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은 어딘지 2%가 부족해 보인다. 한글 창제에다 육진을 개척하고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문무(文武)에 뛰어났던 군주이지만 '문'을 너무 강조한 탓이다. 반면에 이순신장군 동상에선 강한 기상이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이순신 동상의 이순신조차도 이순신 그 자신이 아니라 이순신의 이념형일 뿐이다. 정체성은 '해석된 것'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송상일 선생은 '제주적인 것'의 성공 사례로 돌하르방을 들었다. 뭉툭한 코와 통방울 눈, 봉긋이 솟은 벙거지까지 돌하르방은 하나하나가 둥글둥글 큼직하다. 육지부의 장승이 강조하는 귀면성(鬼面性)과는 다르게 해학적(諧謔的)이며, 그 해학성은 구멍이 숭숭 난 제줏돌의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했다. 옛 제주의 장인들은 그 부석부석한 돌을 깎아 콧날을 오뚝 세우는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가장 개성적인 돌조각품을 빚어냈다. 제주가 가진 '하나의 자질'에 충실함으로써 제주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제주적인 것을 못 살린 대표적인 사례로 도로(길)를 꼽았다. 세계의 명품(名品) 도로들은 지나다니기 편리한 길이 아니라 오히려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 제주의 길들은 곧고 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한결같이 직선도로 중심으로만 뽑아 제주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마치 구멍이 숭숭 난 제줏돌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조각하려는 우(愚)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송 선생은 정체성을 '과부족(過不足)이 모두 문제가 되는 그런 물건'으로 비유했다. 자기 정체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삶의 방향성을 잃게 되고, 과도하면 자폐(自閉) 내지 배타적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토론자는 최근 타계한 '변시지 화백(그림)'을 우리 제주문화의 정체성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제주문화의 정체성 찾기는 어쩌면 이제 새로운 시작인지도 모른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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