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완전한 해결' 이제 시작이다

'4·3 완전한 해결' 이제 시작이다
  • 입력 : 2013. 07.02(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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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 4·3'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이 빚어낸 제주4·3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悲劇)으로 일컬어진다. 희생자 규모만 보면 5·18항쟁(228명)이나 거창사건(934명) 등 여느 사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현재까지 4·3사건중앙위원회가 의결한 4·3 희생자는 1만4033명, 유족은 3만1255명에 달한다.

이처럼 4·3은 우리 제주민들에겐 통한(痛恨)의 역사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그동안 잇따랐다. 지난 2000년 특별법 제정과 2003년 국가차원의 진상보고서 채택,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및 4·3평화공원 참배 등이 이어지면서 도민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달 27일 '매년 4월3일을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념일(追念日)로 정하도록 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 4·3중앙위가 건의한지 무려 10년 만의 일이다. 국가추념일 지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희생자 유족회 등 도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우근민 지사도 "국민들에게 4·3의 역사적 진실을 바로 알리는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개정안엔 각종 지원책들이 명시되어 있으나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선 숱한 과제가 아직도 산적해 있다. 제대로운 4·3평화대공원 조성도 그 중 하나다. 국가추념일 지정안 또한 법률이 아니라 부대의견으로 통과됐다. 앞으로 정부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의결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물론 정부가 확약(確約)한 만큼 내년부터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일부 우익세력들에 의한 '4·3 흠집내기'도 여전할 것으로 보여 결코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제주자치도가 정부와의 협력과 절충을 통해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이유다.

최근 들어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서로 만나 오랜 갈등을 풀고 화해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은 매우 바람직스러운 현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화해(和解)와 상생(相生)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소설가 현길언씨의 '4·3 관련 글'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글은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정치권력에 야합한 왜곡(歪曲)된 결과물'로 폄하해 유족들과 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4·3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은 그만 거둬야 한다. 이로 인해 갈등과 반목을 계속하는 것은 역사를 과거로 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질곡(桎梏)의 역사였던 '제주4·3'을 이제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을 향한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제주4·3도 내년이면 66주년을 맞는다. 국가 차원의 첫 위령제(慰靈祭)가 거행되는 날, 박근혜 대통령이 필히 참석하여 보다 큰 희망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해마다 4월이면 온 섬의 동백들이 핏빛 울음을 터뜨린다"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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