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기다리던 '단비'가 지난 4일 제주지방에 내렸다. 비록 일부 지역에 국한되고 가뭄 해소에는 역부족이지만 온 몸을 흠뻑 적셔도 좋을 만큼 얼마나 고대한 비였던가. 이날 지역별 강수량을 보면 추자도 44.0㎜를 비롯해 선흘 12.0, 고산 9.2, 서광 6.0, 구좌 4.0, 모슬포 2.5㎜ 등이다. 하지만 서귀포 등 산남지역과 한라산 어리목 및 윗세오름 등은 비가 소량에 그쳐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또 다른 '단비'도 있었다. 지난 65년간 반목과 질시로 등지고 살았던 4·3유족들과 경찰이 마침내 '화해(和解)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들은 이달 2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화해와 상생(相生)'을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양측은 "모두가 다 같은 피해자라는 인식 아래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껴안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의 공식적인 만남은 지난 6월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에 제주4·3유족회 회원들이 충혼묘지를 찾아 군경(軍警)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한 후 두번째다. 이날 경우회측은 "내년 4·3위령제에 참여해 4·3에 의해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冥福)을 함께 빌겠다"고 약속했다.
4·3유족회와 경우회는 "앞으로 이념적인 생각을 버리고 조건없는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도민화합에 앞장섬은 물론 갈등 치유에 노력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지난 세월 반목(反目)의 역사를 겸허하게 반성하는 가운데 희망찬 제주건설의 역군으로 동참하는 한편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란 다짐도 잊지 않았다.
반세기(半世紀)를 훨씬 넘긴 세월동안 양측은 편향된 시각에서 서로를 불신하고 냉대하며 자기들만의 주장이 옳다고 등을 돌리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날 만남으로 지긋지긋한 '과거의 악몽(惡夢)'에서 벗어나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함으로써 도민통합과 지역발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제주4·3의 국가추념일 지정과 함께 '완전한 해결'에 서광(瑞光)이 비치는 이유다.
이같은 반가운 소식과는 달리 제주섬 한 켠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이 존재한다. 이른바 '강정문제'가 바로 그것으로, 제주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는 행렬은 지금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마무리된 '2013 제주생명평화대행진'도 그 중 하나다.
강정마을회와 군사기지범대위 등 108개 시민사회단체는 7월29일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강정마을을 출발 5박6일간 290㎞의 평화행진에 나섰다. 이 대열엔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와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미국)도 동참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參戰)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은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문화제에서 "제주해군기지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이슈가 됐다"며 "강정마을을 지키고 제주를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번 평화대행진은 구럼비 등 강정마을을 에워싼 '평화의 인간띠 잇기' 행사로 대장정의 막(幕)을 내렸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은 1000여명의 마음 속엔 '강정! 생명평화를 노래하자'는 큰 물결이 일렁였다. '강정'이 서로 손을 맞잡고 화해와 상생을 노래할 날은 과연 언제일까. 잠시나마 시름을 덜 폭우(暴雨)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 <논설실장 kckim21@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