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메가박스에서 제9회 제주영화제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대신해 참석한 김선우 환경경제부지사가 다음과 같은 축사를 했다. "오늘 이 자리는 우근민 지사님께서 나와야 하는데 다른 일과 중복돼서 부득이하게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문화예술 관련 행사장에 가면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축사다. 상상력이 빈곤해서인지 우 지사를 대신한 인물이 부지사건, 문화관광스포츠국장이건, 문화정책과장이건, 심지어 담당계장일지라도 멘트는 한결같다.
지난 13~14일 충북기자협회와 청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전국 지역기자들과 함께 1박2일 일정으로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현장에 다녀왔다. 청주비엔날레는 세계 유일의 공예제전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각국에서 참여요청이 쇄도할 만큼 속칭 대박을 치고 있다. 이렇게까지 성공하게 된 비결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컸다. 청주시는 많은 이들이 반대했지만 10년간 방치됐던 담배공장인 옛 청주연초제조창을 350억원에 사들이고 척박한 콘크리트더미를 그대로 이용한 전시장을 만들었다. 물론 그 와중에 공무원 뇌물수수사건이 터지고 20여차례의 토론회를 거치는 등 진통도 있었다. 그러나 청주비엔날레는 공예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에코비엔날레로 성장했다.
제주도는 올해 제주문화예술육성사업에 6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123개 사업에 나눠주다보니 1개 사업당 평균 지원액은 5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제주영화제 개막식에서 김 부지사는 "문화예술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도가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지사님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고도 했다. 관계 공무원들이 지사를 대신해서 정치적 수사를 남발하는 만큼 우 지사에게 문화예술 육성의지를 기대하는 마음은 우려로 변하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실망이 크면 민심으로 표출된다.
<표성준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