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는 중국 고전 철학사에서 아주 독특한 존재다. 노자의 '무위(無爲)'의 도리를 계승한 장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는 것은 없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도 없다'란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주장했다. 올해 초 발간된 『장자의 내려놓음』은 소요유(逍遙遊·자유무애의 삶)에 담긴 비움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장자의 입을 빌려 사람들에게 "내려놓으라"고 권한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그리 쉬운 일인가. 움켜쥐는 것만 배우며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염홍철(69) 대전광역시장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은 아주 큰 용단(勇斷)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염 시장은 지난 8월27일 기자회견을 갖고 "예측 가능한 정치적 관행을 만들고 안정적인 시정운영을 위하여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늘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소망해 왔다며 멈출 때는 멈춰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현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불출마(不出馬)를 밝힌 것은 염 시장이 처음이다.
염홍철 시장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교수를 거쳐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했으며 대학총장도 지냈다. 그리고 인구가 150만명에 달하는 거대 광역도시인 한밭(大田)시장을 10년째 역임하고 있다. 한 번은 관선시장, 두 번은 민선으로 '행정의 달인(達人)'이라는 평도 받는다. 지금도 출마 예상자 상대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수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불출마를 '지방자치단체의 신진대사'로 비유했다. "자신이 하면 더 잘할 것 같다는 건 독선(獨善)이죠. 얼마든지 잘할 사람이 있어요. 새로운 사람에 의해 변화하는 게 발전이지, 혼자서 하는 건 맞지 않아요." 염 시장은 내려놓아야 민심(民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불출마 선언 이후 시장 당선 때보다 더 큰 격려를 받았다며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내려놓음'에 목이 말랐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의 지론은 '지족무욕 지족가락(知足無辱 知足可樂)'이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퇴임 후의 행보에 대해선 공직보다는 문화예술이나 사회복지든 명예로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염 시장은 이번 불출마 선언으로 당적(黨籍)을 자주 옮겨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汚名)도 털어냈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자의 내려놓음』 제1장의 제목은 '무거운 짐을 벗고 가볍게 나서자'다. 이를 위해선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고 권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불행하니 스스로 족쇄를 채우지 말라는 경구(警句)도 눈에 띤다. 제2장의 제목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였다.
이제 이틀 후면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秋夕)이다. 흩어졌던 가족과 친지들이 서로 만나 못다한 정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울 것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 중엔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핫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올 한가위엔 '정치인의 내려놓기'가 최대 화두가 되었으면 한다. 제주에서 염홍철 시장과 같은 통 큰 결단을 기대하는 것은 한갖 꿈에 불과한 것일까. 점차 차오르는 달이 만월(滿月)을 향하고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