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미국의 49개 주정부와 담배회사들간 천문학적인 배상(賠償) 합의가 이뤄졌다. 발단은 1994년 미시시피주를 시작으로 주정부 등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흡연으로 인한 질병치료에 자신들이 진료비를 지출했으니 이를 변상하라는 것이었다.
담배 소송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소송의 와중에 내부자 고발과 내부 문건 유출이 이뤄졌다. 또 미국 의회의 자료제출 명령으로 담배회사의 거짓 주장 및 니코틴 조작 등이 밝혀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결국 필립 모리스와 R.J.레이놀드 등 4대 담배 메이저와 40개 군소업체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합의된 배상액만 2460억 달러. 한화로 치면 무려 260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미국의 담배 소송 역사는 꽤나 길다. 1954년부터 1992년까지 진행된 소송만도 80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단 한건도 원고가 승소(勝訴)한 사례는 없었다. 소송 당사자가 주로 폐암에 걸린 개인으로, 막대한 돈을 투입해 유능한 변호사를 거느린 담배회사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反轉)된 것은 1993년. 간접흡연 피해소송과 집단소송 등이 이뤄지면서 원고 승소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담배 소송에 일대 획을 긋는 거액의 배상액 합의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동안 몇 건의 담배 관련 소송이 제기됐는데 대부분 원고가 1·2심에서 패소해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개인 자격인 원고가 흡연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증명하지 못한 탓이다.
담배 소송의 경우 개인보다는 공공(公共)기관이 해야 승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앞서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담배 소송'에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과반수 의결로 담배 소송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건강보험공단은 2012년 기준 한 해 1조7000억원이 폐암 등 흡연 관련 질병에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흡연 때문에 폐암 등이 늘었고 건강보험 재정에서 추가로 진료비가 지출되는 만큼 그 손해를 담배회사들이 물어내야 한다는 게 공단 측의 주장이다. 특히 폐암 중 소세포암 등은 확실히 흡연과의 인과성(因果性)이 인정됐다고 보고 있다. 소송 가액은 최소 130억~최대 3300억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이같은 움직임에 담배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담배협회는 "건강보험공단의 담배 피해 추적 조사는 표본의 대표성도 없고 진료비 산정 오류(誤謬)까지 발견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또 "앞으로 10년이 걸릴 지 모르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드는 소송보다 현재 징수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문제 해결에 더 합리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담배 소송은 무척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우선 담배와 암 발생 사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비롯해 담배 자체의 결함이나 회사의 고의과실 등을 뚜렷하게 밝혀내기가 어렵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까지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한 번은 거쳐야 할 중대 사안이기도 하다.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이 어떤 결과로 귀결(歸結)될 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