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서(遺書) 내용이다. 그 속에는 5만원권 지폐 14장(70만원)이 들어 있었다. 집세 50만원과 가스비 등 공과금 20만원을 어림잡아 계산한 돈으로 추정됐다.
어머니인 박씨는 12년 전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식당일을 하며 홀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지만 생활고로 인해 치료를 포기했다. 둘째 딸은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계를 보태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가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뒤 그나마 들어오던 수입도 끊겼다. 결국 이들 모녀가 선택한 것은 극단적인 동반 자살이었다. '빈곤이 낳은 비극(悲劇)'이 아닐 수 없다.
우울하고 안타까운 소식은 이달 들어서도 계속됐다. 서울 강서구 50대 부부는 병마와 생활고를 비관해 딸에게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30대 주부가 성장장애 4살 아들과 투신했는가 하면, 경기 광주와 동두천에서도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워온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복지예산 100조(兆) 시대의 어두운 그늘이자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46.7%가 스스로를 '하층민'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조사를 처음 시행한 198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소득불평등 지수는 여섯번째로 높았다. 특히 소득 상위 20%의 가처분소득(可處分所得·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득)은 하위 20%의 5배가 넘는다. 이는 '빈부(貧富)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음을 뜻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조장하는 '빈곤층의 양극화(兩極化)'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저생계비(2013년 기준, 4인 가구 155만원)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은 35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호를 받는 인구는 약 150만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00만명은 부양의무자 규정 등 갖가지 제약으로 사각지대(死角地帶)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부양의무제는 수급신청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가족의 부양(扶養)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에서 탈락시키는 제도다. 이 제도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연락이 아예 두절됐는데도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기에 부양의무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대표적인 독소(毒素)조항으로 꼽혀왔다.
송파 세 모녀의 경우도 어머니는 근로능력이 인정되는 두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되기가 어려웠다. 지병이 있는 큰 딸 역시 어머니가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혜택을 못받을 가능성이 컸다. 서로가 서로의 족쇄(足鎖)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법 테두리 밖에 방치된 빈곤층(貧困層)은 연일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행정은 '복지 확충'보다는 '부정수급자 색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나 폐지, 최저생계비 우선 보장 등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가난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죽어가는 이웃들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