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내전과 4·3, 미국을 말한다

그리스 내전과 4·3, 미국을 말한다
허호준의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
  • 입력 : 2014. 05.24(토)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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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체제 형성기에 촉발
민간인 학살과 내전 야기
"대소봉쇄전략 구현 무대"

그리스와 한국.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닮았다.

20세기 중반 그리스와 한국은 제국주의 침탈 이후 유사한 역사적 경로를 걸어왔다. 그리스는 독일의 침탈을 겪었고 한국은 일본의 침탈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 후 두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갈등의 심화와 확대를 불러온다.

그리스 내전과 제주4·3은 공간적, 내용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구조와 논리속에서 민간인 학살과 내전을 야기시켰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가까운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4·3은 지역적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 냉전체제 형성기에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제주4·3의 진압과정에서 왜 수많은 제주도민이 죽임을 당했는가. 제주4·3은 미국의 대소봉쇄전략의 구현무대였는가.

허호준(한겨레신문 사회2부 부장)의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그리스 내전과 제주4·3 그리고 미국'은 그리스에서 발발한 내전을 분석해 그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그리스에서 자료를 찾고 경험자들을 만나고 현장을 답사하며 4·3과 그리스내전을 취재하고 연구했다. 4·3 경험자들의 증언은 말할 것도 없고 4·3시기 제주도에 근무했던 미군 고문관들의 행방을 찾아내 그들을 직접 만나 경험담을 들었다.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학살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냈다.

4·3은 미국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4·3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소의 냉전체제 형성기 국가 건설과정에서 일어난 국제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이같은 이유로 4·3은 1946~1949년 벌어진 그리스 내전과 맥이 닿아있다.

그리스 내전을 계기로 발표된 트루먼 독트린은 냉전 체제의 형성을 알렸다.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통해 그리스 내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최종적으로 그리스의 게릴라 세력과 미군의 지원을 받은 우익-왕당파 정부군과의 싸움으로 민간인을 포함 15만여명이 희생됐다. 내전 이후 친미 반공국가가 수립되고 군사독재의 길로 나아간 것도 한국과 닮은 꼴이다.

미국과 소련이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곳은 한반도였다. 남쪽 끝 제주에서 일어난 4·3을 소련이 사주했거나 개입했다고 인식한 미국은 이를 예의주시하며 미군 지휘관을 최고사령관으로 파견해 진압을 진두지휘했다. 제주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미군은 정부 수립 이후에도 토벌을 지원했다.

저자는 "미군정 당시 일어난 4·3과 미국과의 관계 규명은 4·3의 진실 찾기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며 "냉전체제 형성기 트루먼 독트린 발표와 미국의 봉쇄 전략이 그리스내전과 제주4·3의 전개에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도서출판선인. 5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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