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현상 분석
"억눌린 정신 응원에 표현
아이 살리는 교육 바꿔야"
"지난 한달, 그러니까 2002년 6월은 우리 온 국민이 일어나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열광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것도 아니고 자유를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독재자를 타도하자는 것도 아니고 통일을 이룩하자는 것도,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좀 어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공 차는 놀이를 구경하면서 그것을 응원한다고 그렇게 열광했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터져나왔던 온 국민의 응원 열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고함소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이 쓴 '백의민족이 왜 붉은 악마가 되었는가'는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이 책은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응원 열기에 감동 받아 한달 보름동안 쉼없이 썼던 1200매 분량 원고를 묶어 2004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이름으로 나왔다가 절판됐다. 지은이가 당초 지었던 제목은 '백의민족이 왜 붉은 악마가 되었는가'라는 유족의 말에 따라 이번에 이름을 바꿔 새롭게 펴냈다.
지은이에게 '붉은 악마'의 함성은 8·15 해방때 온 겨레가 외쳤던 함성과 똑같은 해방의 소리로 들렸다. 붉은 악마가 내지르는 해방의 외침은 전 국민을 내리누르는 온갖 정치·경제·문화·교육에 뿌리박힌 억압구조에 숨통이 막혔던 것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억눌렸던 정신의 표현'으로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에 꼬이고 비틀리고 닫히고 꽉 막혔던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이번에 이런 모양으로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는가라고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 교육' 대신 아이들을 자연스러운 참사람으로 키우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와 함께 아이들을 억누르는 구조는 그릇된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는 교육 구조와 경제 정책, 거기다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교육의 중심에 '사람'을 놓지 않고 오로지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비인간적 교육 정책으로 아이들을 내몬다고 비판했다.
이런 현실에서 히딩크가 보여준 것은 학벌, 인맥을 아주 무시하고 선후배의 층계에 따라 위아래를 구분하는 질서를 여지없이 깨뜨려버린 선수 기용이었다. 지은이는 어떤 유력한 사람의 추천 따위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순전히 사람 위주로 실력만 보고 선수들을 기용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책은 '붉은 악마의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혁명의 열매가 제대로 맺으려면 그 폭발성이 단지 축구 경기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온 겨레가 일상의 나날에서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발성과 창의성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간곡하게 말한다. 고인돌.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