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상 시인은 '한라산'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내염(內焰)을 고이 끝낸 시인의 하품/정숙한 지어머니의 희어진 머리/태초로부터 명암(明暗)을 이겨온 실존(實存)/인연의 선악에도 자유로운 부동(不動)/국토신(國土神)의 이궁(離宮)"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태초부터 제주를 지켜온 한라산은 국토신(단군)이 잠시 머물던 궁전이다. 그러기에 한라산은 옛부터 영산(靈山)으로 불리며 금강산·지리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꼽혀왔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는 곧 한라산이다. 그것은 도민들의 가슴 속에도 온전히 살아 있다. 제주인에게 있어 한라산은 어머니요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적 지주다. 또한 한라산은 제주지역 욱상생물 7000여종 가운데 66%가 서식할 정도로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제주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제주자치도가 행정조직 개편과 관련 '한라산연구소'를 통·폐합 대상으로 삼아 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라산연구소가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은 지난 2001년 1월. 한라산국립공원의 동식물과 지질, 기상 및 훼손실태 등을 과학적·체계적으로 보호 관리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비록 공원관리사무소의 부설기관에 불과했지만 '특정 산'을 연구대상으로 삼았기에 그 상징성(象徵性)은 매우 컸다. 이후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별도의 사업소로 독립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도지사의 취향에 따라 부침(浮沈)이 끊이질 않았다. 2008년 김태환 지사 시절, 당시 여론의 따가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라산연구소는 환경자원연구원에 통·폐합되어 '과' 단위로 전락했다. 한라산연구소가 나락을 털고 부활한 것은 민선 5기 우근민 체제가 들어선 2011년이다.
2013년 들어 한라산연구소 조직은 더욱 확대됐다. 기존 업무 외에 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 등 국제보호지역의 연구 업무를 총괄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한라산연구소는 부활한지 3년 만에 또다시 존폐(存廢)의 기로에 섰다. 원희룡 도정이 향후 조직개편 때 한라산연구소를 신설되는 '세계유산연구원'에 편입시키기로 잠정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확정된다면 독립적인 지위 박탈은 물론 그 위상(位相) 또한 현저하게 떨어질 것임이 틀림없다.
이 문제는 도의회 임시회에서도 집중 거론됐다. 의원들은 한결같이 "도정이 바뀔 때마다 한라산연구소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통·폐합은 결코 안될 일"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브랜드 가치만 따지더라도 '세계자연유산'보다는 '한라산'이란 브랜드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으로, 한라산이 갖고 있는 명칭 및 정신적 가치(價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어느 의원은 2011년 불거진 '한라산국립공원 국가사무 환원 파문'을 거론하면서 "만약 정부가 또다시 관리권 이양을 요구할 경우 내세울 명분이 없다"며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원희룡 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청정자연 등 제주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성장 추구"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를 아우르는 획기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한라산연구소는 그 소임을 맡을 중심 축으로, 통·폐합이 아니라 조직의 확대 개편을 통해 명실상부한 '제주의 씽크탱크'로 거듭나야 한다. 먼 앞날을 내다보는 원희룡 도정의 결단(決斷)이 요구된다. <김계춘 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