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8)/제4부-옛길을 탐하다](4)보존·활용방안 서둘러야

[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8)/제4부-옛길을 탐하다](4)보존·활용방안 서둘러야
도시공간 효율성·획일성 추구할수록 옛길 소멸 가속
  • 입력 : 2014. 09.03(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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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된 옛길인 검정목골을 바탕으로 형성된 중앙로 상점가 골목시장 풍경. 이 길은 동문재래시장과 동문공설시장을 거쳐 동문시장까지 이어진다. 강희만기자

옛길 변화 특성 파악하고 잔존 실태 정확히 조사
보존·활용방안 고민해 나가야
주변 이해당사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공공자산 인식을


제주에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형성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일제에 의한 왜곡된 근대화가 제주시 원도심의 풍경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에도 도시개발에 대한 철학이나 진지한 고민없이 개발지상주의에 빠져 제주시 원풍경은 속절없이 변해갔다. 도시공간의 편의성과 효율성, 획일성에 매몰되면서 옛길은 불편하고 개발에 거추장스런 존재로 인식돼 왔다. 그렇지만 좁고 구불구불 이어진 옛길은 실핏줄처럼 도심구석구석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제주성 원도심의 옛길은 길게는 수 백 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호흡해왔다.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화와 도시개발이란 명분아래 옛길은 점차 도심의 뒷골목으로 전락하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도시의 기능을 떠받치고 있다. 옛길도 현대화된 도시의 일부이자 도시안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제주시 중앙로 상점가 골목시장. 이곳서부터 동문재래시장과 동문공설시장, 동문시장, 동문수산시장 등이 길게 이어진다. 상점가 골목시장은 600년 된 도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옛길의 이름은 검정목골이다. 검정(檢井)은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마치 호미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매립돼서 찾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 솟아난 물은 그 맛이 시원하고 달다고 전해진다. 이 길은 중앙로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산지천까지 이어진다. 산지천 건너서는 구명골이다. 즉 중앙시장에서 동문재래시장~동문공설시장~동문시장으로 이어지는 일대는 검정목골과 구명골이라는 600년 된 옛길을 따라 형성됐다.

원래 동문에서 서문까지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구불구불 도로가 연결되고 있었다. 1914년 지적원도에는 제주성 안의 옛길이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적원도를 보면 동문에서 구명골을 거쳐 검정목골~두목골~이앗골~서불막골~서문까지 구불구불 도로가 연결되고 있었다. 이 도로가 남쪽 순환로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동문에서 칠성골을 거쳐 서문까지 이어진 도로는 북쪽 순환로라고 할 수 있다. 제주성 안 동서를 횡단하는 주요 도로가 두 갈래로 형성된 셈이다. 남북 도로체계는 한짓골과 객사골이 중심도로였다.

중앙시장과 동문재래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시장 등은 제주성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도로 중 남쪽 순환로를 따라 발달한 것이다. 600년 옛길이 근현대시기를 거치면서 제주시 원도심의 중심상권지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옛길의 흔적이 남아있는 중앙로 상점가 골목시장 주변.

제주성 북쪽 순환로의 중심도로인 칠성골도 마찬가지다. 칠성골이라는 이름은 탐라시대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칠성대가 세워졌다는 데서 유래한다. 칠성골은 탐라시대와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제주시 중심상권을 형성했다.

원도심 안에 600년 된 옛길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제주성은 탐라시대부터 있었던 '고성' 즉 묵은성을 토대로 확장을 거듭했다. 제주성 수축기록이 문헌에 나타난 시기는 1411년(태종 11년) 이다. 『태종실록』에 "제주성을 수축하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에앞서 1408년(태종 8년)『태종실록』에는 "제주에 큰 비가 내려 제주성에 물이 들어 관사와 민가가 표몰되고 화곡(禾穀)의 태반이 침수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주성은 이 시기에 전통적인 도로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오래된 길은 6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옛길이라고 해서 과거의 길로 한정하거나 과거의 기능에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 제주성의 옛길은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시간의 연결고리가 된다. 현재의 길임과 동시에 과거부터 이미 존재한 길이기도 하다. 때문에 옛길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길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옛길을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제주성 원도심의 옛길은 여전히 실태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방정부 차원의 관련조례 제정이나 보존·활용방안 역시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옛길에 대한 관련규정은 물론이고 연구조차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14년 지적원도를 바탕으로 재현한 제주성 안 주요 옛길. 1이 한짓골, 2가 객사골, 3이 북신작로에 해당되며, 4가 동문에서 칠성통을 거쳐 서문으로 연결하는 북쪽 순환로, 5가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한 도로, 6이 동문에서 구명골~검정목골을 거쳐 서문으로 이어지는 남쪽 순환로에 해당한다.

옛길도 원형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너비가 확장되거나 선형이 변경되거나 단절되기도 하며, 소멸되기도 한다. 이 같은 옛길의 변화특성을 파악하고 보전방안을 고민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옛길은 주변의 이해당사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관련된 공공자산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옛길 보전·활용 등에 주민이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고민해나가야 한다.

이같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선 옛길의 잔존실태를 정확히 조사하고 파악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옛길 보존 정비대상을 선정 답사코스를 개발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는 등 활용방안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옛길의 변화과정에 대한 자료수집 및 관련자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 실태조사 등을 통해 문화재로 지정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옛길은 원도심의 역사경관을 형성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며 "제주특별자치도향토유산보호조례를 적극 활용하여 옛길을 향토유산으로 지정 보존하고 투어프로그램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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