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7)남원읍 태흥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7)남원읍 태흥1리
  • 입력 : 2014. 11.25(화)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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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남원읍 태흥1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위)과 마을 해안가 올레.

시대가 달라졌어도 건강한 수눌음정신이 살아숨쉬는 마을
전체 농경지 92%가 감귤과원…하우스감귤 1년 내내 출하
날개달린 장수설화 바탕으로 스토리텔링박물관 조성 계획도
최근 용인시축협과 자매결연…친환경비료-감귤 협력모델 제시
마을기업형 주식회사 만들어 출향 청년에 일자리 제공 꿈




서중천과 의귀천 사이에서 비옥한 토양을 대대로 일구며 살아온 마을이다. 북쪽으로 의귀리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 바다엔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고려 말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 조선 후기에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300여 년 전부터 벌포리 또는 폴개라고 불렀다. 19세기 중반부터 봉한잇개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보한리라고 부르다가 동보한리와 서보한리를 합하여 태흥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마을 규모가 커지고 생활권이 달라지면서 태흥1리, 2리, 3리로 나눠졌다. 서중천은 제주부 정의군 서중면 보한리 시절에 있었던 명칭에서 유래한 듯 하고. 새숫개포구 옆 해안도로에 몽돌로 쌓은 벌포연대가 늙어 보이지만 아직도 불을 피워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우직한 소임을 다할 것 같다.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코스를 걸어가다 보면 썰물에 드러난 검은빌레와 둥근 돌들이 바다와 숱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을 전경을 감상하려 해도 너무 많은 상록수로 뒤덮여 있어서 마을길을 따라다니며 가늠할 수밖에 없다. 위성사진을 보며 마을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하다 보면 가장 큰 특징을 만나게 된다. 비닐하우스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 경지면적이 168㏊ 가운데 과수원이 155㏊라고 하면 어떤 마을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감귤과수원. 노지감귤 농사도 많이 하지만 하우스감귤이 1년 내내 출하되는 마을이다. 800여명 인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감귤로만 한 해 300억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297농가로 나누면 가구평균 연소득 1억원 이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사무소와 복지회관 옆에 잔디운동장을 보유한 마을을 본 적이 없다. 회관 규모도 3층 시설이다.

마을에서 멀리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일몰이 환상적이다.

마치 장수무덤처럼 쌓여있는 벌포연대.

마을 사람들의 특징을 묻자 "남원읍 17 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에 와보면 안다"고 했다. 인구수로는 9번째이지만 참석인원이 제일 많다는 것. 예로부터 어른을 공경하고 선후배 사이에 위계질서가 으뜸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송연화 부녀회장은 말한다. "회원들 모두가 친언니요 친동생 같다. 언니가 도움을 청하면 자신의 일보다 먼저 달려가서 해주는 불문율에 가까운 풍습이 있다." 마을공동체 의식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눌음정신이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마을이라는 자부심. 그러한 결속력은 마을의 총의가 모아지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목적의식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태흥1리의 문화자원이 있다면 장수설화다. 날개 달린 장수에 대한 전설이나 설화는 제주섬 여러 지역에서 전해내려 오지만 태흥1리의 장수 설화는 구체적으로 죽은 장수의 돌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 장수설화의 공통적인 얼개는 순차적으로 이렇다. '날개 달린 창수가 태어난다-날개를 숨기고 키운다-힘과 능력을 보여준다-관가에서 알게 되거나, 알려지면 가족들이 역적으로 몰릴까봐 죽임을 당한다.' 태흥리 장수설화의 독특함은 죽은 다음 처리과정이다. 관가에서는 죽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석관을 만들어 묻어놓고 그 위에 엄청난 돌과 자갈을 덮어서 눌러놨다는 것이다. 그 장소가 있다. 놀라운 스토리텔링 현장을 찾아갔지만 그 돌들은 대부분 과수원 돌담으로 사용되었고 땅바닥에 석관으로 썼었다는 평석이 박혀 있었다. 태흥리 역사에서 그 언젠가 있었던 비운의 영웅이 관가의 두려움에 살해당한 것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 속에 담아 간직하여 전승에 전승을 거듭한 것은 아닐까.

김태형 태흥1리장

김태형 리장은 스토리텔링 전문가들과 함께 이 날개 달린 장수설화를 마을의 상징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소서물, 물러진 연디, 모세물, 옥기오름, 은진수 등 마을 지명들이 대부분 이 장수설화에 녹아있다. 마을 방문객들에게 흥미를 제공할 이야기의 근원지라는 것. 설화를 문화자산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토리박물관을 태흥1리에 만들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꿈도 설계하고 있었다. 저런 마을 결속력이면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이 부자마을은 결국 청년회원들에게 상속된다. 김병찬 청년회장의 포부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을기업형 주식회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감귤주산지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농업중심의 마을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출향한 청년들이 돌아와 경제적 안정을 확보해줄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청년정신 그대로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리라.

침착하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에 용인시 축협과 자매결연 맺었다. 용인시 축협에서 양질의 친환경비료를 싸게 사들이고 태흥1리의 감귤을 상대방에서 구매하는 협력모델이다. 전국을 상대로 품질 경쟁력을 가진 태흥1리 감귤을 보다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전략 마련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면서 시장에 대한 경험을 윈윈해법 속에서 찾아가는 작업. 이런 모습을 발전적으로 추진하여 안정적 고수익을 감귤로 얻고서 이를 재투자하여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물밑 노력이 활발하다. 백조의 발바닥이 물속에서 바쁜 것처럼. 외형은 조용한 농촌마을이지만 어딘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태흥1리는 청년회장이 추구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마을발전 전략이 통할 것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농가들이 기업농 마인드로 시설감귤에 도전하여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수익이 도시 중소기업 정도 되는 농가가 많은 곳.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진취성만 보유한다면 마을 스스로 기업화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확신한다. 농사꾼이라는 자부심으로 성공한 사람들. 감귤농사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식농사도 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한 것이다. 또 하나의 태흥1리가 '바톤패스 존'에서 아들 딸 세대에게 그 역사적인 바톤을 넘겨주고 있었다. 더 잘 달릴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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