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늦가을 제주 억새 길

[길 路 떠나다]늦가을 제주 억새 길
  • 입력 : 2014. 11.28(금) 00:00
  •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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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바람에 출렁이는 은빛물결 실루엣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정일근 시인의 '가을 억새' 중 일부다.

손을 흔들며 무채색 은빛물결을 어루만져주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억새들이 누군가에게 손을 흔든다. 점점 이별의 시간이 다가옴을 아는지 못내 아쉬워한다.

가을이 떠난단다.

'제주의 봄' 하면 유채꽃을 먼저 떠올린다. 그렇다면 제주의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은빛물결의 '억새'일 것이다. 요즘 제주는 섬 전체가 그야말로 억새 밭, 아니 억새 천국이다. 시내를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높디높은 푸른 하늘 아래 노란 감귤과 함께 억새가 장관이다. 한라산을 둘러싼 산등성이와 오름은 물론 들판마다 억새들이 군락을 이뤄 늦가을 막바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억새 드라이브길

제주지역에서도 동부의 금백조로, 동남부의 억새오름길, 한라산 중산간도로인 남·북산록도로 등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성산읍 수산2리 사거리에서부터 구좌읍 송당리 소재 아부오름 인근 사이의 '금백조로' 구간은 억새 명소로 정평이 나 있다. 금백조로를 즐겨 찾는 이들이 추천하는 팁 하나. '늦은 오후 이후 수산에서 송당 방면으로 지는 해를 마주하라.' 억새들이 '역광(逆光)'을 머금어 마치 한겨울 눈이 내려앉은 듯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주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특히 수산2리 자연생태마을 포토존에서 동쪽 끝을 바라보면 은빛물결 너머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껴안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한 아름 가득 안고 갈 수 있다. 덤으로 주변 오름 중간중간 우뚝 서 있는 풍력발전기가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성산읍 수산리와 성읍민속마을을 잇는 중산간도로(1119번 지방도) 또한 제주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남제주 억새오름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 되면 색다른 풍광을 뽐낸다. 봉긋봉긋 고개를 내민 오름을 배경으로 늦가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들의 실루엣이 또 다른 가을 춤사위를 선사한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산록남로(1115번 지방도)와 산록북로(1117번 지방도)에서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산록남로는 위로는 한라산, 아래로는 서귀포 앞바다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산록북로는 한라산의 깊은 운치를 누리기에 좋다.

▶억새군락지 산굼부리

도로를 달리다 보면 활짝 핀 억새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군락이라기보다 길게 늘어선 모습인 탓에 카메라 렌즈에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억새들이 운집한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산굼부리다. 매년 가을이 되면 산굼부리는 억새물결에 파묻히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장동건·고소영 커플을 있게 한 영화 '연풍연가', 남상미·이태란 등이 출연한 드라마 '결혼한 여신'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그려져 더 유명해졌다.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억새군락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행여 늦가을 바람이 억새를 간질이기라도 할 때면 은백색 향연의 유혹에 빠질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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