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걷고 싶은 거리'의 전제조건

[백록담]'걷고 싶은 거리'의 전제조건
  • 입력 : 2015. 04.06(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다시 찾아와요…."

가수 이문세의 5집 앨범에 수록된 '광화문연가' 일부분이다. 이문세의 영원한 파트너로 불리우는 이영훈씨가 작사·작곡했다. 음반이 발매된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사랑은 여전하다.

덕수궁 돌담길은 서울시가 선정한 '걷고 싶은 거리' 1호다.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서 시작, 길의 반대쪽은 서대문 인근까지 이어진다. 가로수의 신록과 함께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 정동교회 등 문화·역사의 향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피카소거리 등은 소위 '핫 플레이스'다. 차를 이용하기 보다는 걸어서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고 싶은 뜨는 거리다.

해외 유명 도시들 뿐만 아니라 국내 지자체들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위해 예산·행정력 투입을 마다치 않는다. 도시 재생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실제로 홍대 앞의 집 값은 10년 전에 비해 5~8배 가량 올랐다. 3.3㎡당 700만원 하던 집 값이 지금은 4000만원에 육박한다. 주변 상가의 권리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뛰었다. 알음알음으로 젊은이들이 몰리면서다.

보행공간 확대에 앞선 선진국들의 연구결과는 보다 구체적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도시부동산분석센터는 몇년 전 "걷기 좋은 도시일수록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대학 진학률이 앞도적으로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영국 액센트 마케팅&리서치는 이보다 앞서 "런던 도심을 걸어 다니는 사람은 승용차 이용자에 비해 약 42% 가량 더 많은 돈을 쓴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걷기 좋은 도시들이 비만율이 낮다는 보고도 나온다.

제주지역의 문화·테마거리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수십억원을 들여 조성한 '빛의 거리'와 '신화의 거리'가 퇴출되면서 막대한 예산을 추가로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혈세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제주지역에 조성된 테마거리는 이중섭거리 등 18곳에 이른다. 사업비만도 무려 300억원 가까이 투입됐다. 이 가운데 도민·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거리는 극소수에 그친다. 신화의거리는 인도 곳곳이 패이고, 바닥에 설치된 글귀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 가로수에 설치된 철제 구조물은 걷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대부분 테마·특화거리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조명은 철거되거나 고장·훼손된 채 방치돼 있다. 시설물 또한 관광객은 고사하고 도민들의 이해를 이끌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정서와 이격돼 있다.

예산·행정력을 쏟아 붓는다고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길이, 폭, 건물의 높이 같은 기본요건과 함께 지역·역사성을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수적이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접경에 위치한 '헤이온와이(Hay-On-Wye)'가 대표적이다. 성공 신화는 한 주민이 1960년대 초 마을에 헌 책방을 열면서 시작됐다. 찾는 이들이 늘면서 책방은 40여 곳으로 늘었다. 더불어 한 해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음미하고 고민할 대목이다. 발상의 전환과 함께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41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