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담/책과 함께 커가는 제주]인연(피천득)

[독서대담/책과 함께 커가는 제주]인연(피천득)
슬픔과 그리움, 아름다움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
  • 입력 : 2015. 07.31(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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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왼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과 서귀포시 성산읍에 거주하고 있는 강병돈(오른쪽)씨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싶을때 권할만한 책
저자 피천득은 현대수필 기초 세운 선구자"

'인연'/ 저자 피천득

주옥같은 명 수필 80여편을 모아 엮었다. 피천득의 수필은 백 마디 천 마디로 표현해야 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적은 수표의 언어 안에 함축시키는 절제가 돋보인다. 그리움을 넘어서 슬픔과 애닯음,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피천득의 미문(美文)은 언제, 어느 때 읽어도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7월, 장마를 마치고 본격적인 여름 시즌을 앞두고 성산읍 신천리 멋진 펜션 카페에서 독서대담은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선율과 바다 조망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책과 관련된 대화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함께 책을 즐기는 또하나의 방식임에 분명하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이하'안')=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강병돈(서귀포시 성산읍 주민, 이하'강')= 저는 아름다운 성산에서 태어나서 성산을 사랑하는 사나이입니다(웃음). 지금은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산읍장애인지원협의회 회장과 농촌지도자회 사무국장을 하고 있습니다.

▶안= 오늘 대담할 책이 '인연'인데요. 인생에 인연이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강= 처음 저는 책을 보고서 피천득 씨를 떠올렸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책에서 읽었던 '인연'을 다시 읽으며 새록새록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또 유명 가수의 '인연'이란 노래도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그 노래를 듣기도 하였습니다(웃음). 인생을 살면서 인연은 너무 귀한 것이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모두가 인연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을 보면서 저에게 지금까지 귀한 인연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안=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떤 책인지 책 소개를 부탁합니다.

▶강= 이 책은 누군가에 소소한 삶의 일상을 전하고 싶을 때 권하고 싶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책에는 약 80여 편의 짧은 수필이 들어있는데 무엇보다 책 넘김이 쉬워서 선물하기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인 피천득 씨에 대해 '인연'이란 수필만 알고 계신 분들은 그분이 약 30년간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셨다는 것도 알게 된다면 그의 수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안=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추천하고 싶은 수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강= 저는 '선물'이란 수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에서 선물은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 선물이라고 얘기합니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란 문장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무엇을 줄까를 미리 생각하는 기쁨,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는 기쁨,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 등등을 얘기하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선물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안= 글이 작가를 닮은 작품이라면 피천득 씨의 수필은 피천득 씨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 그래서 제가 작가에 대해 열심히 알아 봤습니다. 몇 가지 알지 못했던 것도 알 수 있었고 그에 대해 알고 보니 그의 수필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우선 피천득 씨는 처음 등단한 것이 수필이 아니라 시였습니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별곡', '파이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하였지요. 대한제국 시절인 1910년 한성부(서울) 종로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피원근 씨는 구한말 시대에 유명한 거부(巨富)였습니다. 그러나 피천득이 6살 무렵,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0살이던 1920년 모친마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삼촌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호인 '금아'(琴兒)는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서화(書畵)와 음악에 능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춘원 이광수가 붙여준 호입니다. 피천득 선생은 2007년 5월 25일 서울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안= 준비한 자료는 제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웃음). 그렇다면 시인이며 수필가, 그리고 영문학자였다는 얘기군요. 피천득 씨의 수필은 매우 섬세한데 그게 시인의 마음으로 수필을 썼기에 그렇군요.

▶강= 그렇습니다. 간결한 문체로 순수한 정신세계를 영롱한 언어로 적어놓은 그의 수필은 시, 즉 운문을 읽는 것처럼 경쾌하며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 현대수필의 기초를 세운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그는 스스로 수필을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더군요. 그래서 피천득의 수필은 산문시라고 평가됩니다.

▶안= 피천득 씨는 자신의 일생에서 두 여성이 있다고 했는데 누군가요.

▶강= 책을 직접 보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책을 겉장에서 다섯장 넘기면 '엄마께'라는 지면이 나옵니다. 매우 인상적인데 어머니가 중요한 분이란 것을 알 수 있죠. 두 번째는 '서영이'란 작품 첫 문장에서 좀전에 얘기한 내용이 나옵니다.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115p) 피천득 씨는 딸 서영이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썼더군요. 글에서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 자, 그렇다면 개인적인 질문이 있는데, 혹시 기억나는 소중한 인연이 있었나요.

▶강=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5년 전에 귀농을 하신 정광택 씨와의 인연이죠. 대기업 임원으로 은퇴하셔서 이곳 성산에서 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 분과 함께 운동하면서 제주에 대한 사랑과 무한한 관심을 지켜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제주에 관해 얘기하면서 그 분이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설명해주고 또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그분의 의견도 경청하는 하게 되었지요. 너무 소중한 시간이고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안= 지역에서 독서와 관련한 활동을 하시나요.

▶강= 성산포 문학회 활동은 2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단지 책을 읽는 것 보다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였습니다. 시와 수필을 쓰고 있지만 아직은 졸작입니다(웃음). 그렇지만 꾸준하게 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을까요.

▶안= 책을 가까이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소개 바랍니다.

▶강= 저는 지역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길 권합니다. 농촌에서는 책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도서관이 매우 중요한 독서의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추천하는 방법은 내가 움직이는 주위, 예를 들면 차안, 안방, 거실 곳곳에 언제든지 집어 들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손이 가게 되지요. 그래서 책읽는 즐거움이 생기면 '자기 독서'를 시작할 수 있지요. 누가 시켜서 하는 독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자신의 발전을 위한 독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 제가 해 온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네요. 인생이란 결국 혼자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 보람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제주인에게 인연이란 것이 사람만이 아니라 제주 그 자체가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제주인'이란 이름 자체가 아름다운 인연이라 생각도 듭니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너무나 좋은 분들과 사는 삶이 축복이요. 아름다운 인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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