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실칼럼] 카이사르와 노자철학

[고경실칼럼] 카이사르와 노자철학
인문학에 길을 묻다<9>
  • 입력 : 2015. 09.04(금) 13:18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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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천년 세월에 명멸해간 영웅들이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무수히 뜨고 떨어져갔다.

 '시오노 나나미'선생의 로마인이야기를 쫓아가다보면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과 같은 역할을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카이사르시저는 40대에서부터 50대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치룬 전쟁에서 100%의 승률을 기록했다. 그래서 그의 군대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불렸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 회의는 평소처럼 오전 10시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회의장으로 가는데 '카이사르'를 수행한 사람은 늘 성실하게 자신을 보필해온 '데키우스 브루투스'였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늘 보필해오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암살되었다. 당시 '카이사르'의 암살음모에 가담한 원로원 의원이 60명에 이른다는 설은 있었지만 이 설에 대한 확증은 없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카이사르

 결국 광란에 빠진 14명이 '카이사르'의 암살음모에 가담했고 그 결과 '카이사르'는 23군데 상처를 입고 가슴 두 곳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기술되고 있다. 암살음모에 가담한 14명의 남자들은 카이사르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사람들이였다. 이 역사적 사실은 결정적 사건현장에는 자기와 가까이 있는 자들이 도리어 날카로운 칼을 내민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로마인들에게는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굳건한 신뢰를 심어주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2년 전 크라수스가 당한 패배를 '카이사르'가 설욕할 것이며 병역을 강요당하는 로마인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도, 또한 돌아오는 길에 도나우강 일대를 재패하는 것도 '카이사르'라면 충분히 성공할 것임을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 기초

 '카이사르'는 세계의 운명을 한 몸에 응축시키고 마침내 루비콘을 건넜다. 그리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의 말처럼 만 5년 만에 모든 것을 해냈다. 지금의 유럽 전역을 통합시키고 중동지역으로 진출해서 이집트와의 내분을 종식시켰으며 세기의 여인 '클레오 파트라'와의 냉혹한 사랑, 고도의 성장기에서 안정된 성장기로 접어든 로마의 일대체제 개혁과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을 구현하는 기초를 다졌다.

 보편과 특수함, 멈춤과 움직임,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하나로 집약되어 정점을 이루게 한 역사의 영웅 '율리우수 카이사르'는 개혁의지에 불타오르는 이상주의자였으며 힘차고 건전한 정신의 로마를 구현하려했던 현실주의자였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기술하고 있다.

 '카이사르'가 어떻게 그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많은 전략가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지만 수많은 승리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이와 반대되는 전략인 '보이는 그대로'를 보고 '주어지는 그대로'를 행한다는 원칙을 반영한 결과 상대의 허점을 노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넓은 로마 영토를 관리했던 분권형 통치방법도 눈여겨 볼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이다. 더불어 종교와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그들에게 로마인으로 자격을 부여하는가하면 고속도로 건설, 수로건설을 통해 경계의 벽을 허무는 국가개조의 개혁의지 그게 '카이사르'의 업적을 존재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불타오르는 개혁의지는 균형을 지향하는 지점에서 독재적 권력집중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이는 그가 암살됨으로써 또 한 단계 역사의 진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로마의 분권형 통지방법 노자의 철학과 같은 맥락

 필자는 이것이 노자의 철학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노자는 개념화된 틀보다는 자율성을 강조하였고,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를 보라고 한다. 누가 시키는 일, 해야 하는 의무적인일보다 있는 그대로를 즐겨야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또한 소국과민의 철학은 분권이란 지점과 일치한다. 국가권력은 소규모로 쪼갤수록 좋은 것이고 각 소규모 집단의 자율과 다양성을 획일화하지 말라는 이야기들은 '카이사르'가 실천했던 전쟁사의 중요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천태만상의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2천 년 전 정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강물 줄기로 연결된 네트워크 시대에 서로를 존중하는 윤리적인 질서 속에서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모토로 역사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삶에 고달픈 부침을 겪고 있다면 경쾌한 '카이사르' 전기를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집권의 역사 속에서 문제가 있다면 위정자들은 노자의 분권적 가치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효율성을 중시하다보면 다양성이 성장을 좌초시킬 수 있다.

 또한 분권과 다양성을 중시하다보면 효율성의 억제도 가져올 수 있어서 타이밍이란 예술적 효과를 놓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류사에 거대국가들의 흥망성쇠 속에는 분권과 집권이라는 두 축의 형태가 번갈아가면서 통치방법으로 등장해왔다.

 국가를 안정화시키려면 중앙집권적 형태의 방법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어느 선을 넘으면 독선적인 흐름이 됨으로서 국가는 해체위기에 직면한다. 분권이 강하면 총체적 관리에 한계를 직면하게 됨으로서 또 다른 국가의 혼란을 초래하기도 해온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앞서 제시했던 로마역사의 천년도 그와 같은 흐름 속에서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우리의 이웃나라인 중국역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대함과 미세함의 순환 역사가 주는 지혜

 하지만 거대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도 작은 풀잎처럼 살았던 사람들의 시냇물 같은 솔솔한 지혜가 있다. 거대함과 미세함의 순환 속에서 오늘이 지혜를 느끼고 싶은 순간이다. 가장 믿었던 부하의 칼에 '카이사르'가 암살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가 종종 있어왔다. 우주의 섭리는 지나침을 좌시하지 않는다. 주역에 나와 있는 「성주괴공」이란 단어가 유달리 새롭다.

 만물은 모두가 연결되어 유와 무의 긴장 속에 상생하는 적절함에 머물지 못하면 천지는 어김없이 역사의 보편적 길속으로 함축해버린다는 교훈 속에서 성현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 할 듯싶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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