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 숲의 시대, 나무의 시대

[목요담론] 숲의 시대, 나무의 시대
  • 입력 : 2015. 09.24(목)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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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세 신인이 모흥혈에서 솟아났다. 이 세 신인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나중에 혼인한 후에는 활을 쏘아 각자의 거처할 곳을 정하였다. 삼성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숲은 제주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반대로 제주역사는 숲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제주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초기 제주도에 정착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면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가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위의 삼성신화는 섬나라인 제주도에 살았던 초기 정착민들이 숲속에 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입는 것과 먹는 것 모두 숲속에서 충당했다. 영역을 가르는데도 활을 쏘아 정했다는 것으로 보아 수렵은 매우 일상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사를 볼 때 사람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불을 지배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뭇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피워 음식도 만들고 추위도 피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뜻이니 이 역시 숲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이런 시대구분 방식은 고고학에서 쓰는 시대분류체계 중의 하나로 세 시대 체계라고 한다. 이름에서 보듯이 이것은 도구의 제작과 이용기술에 따라 구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류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의 시대분류에는 빗살무늬토기시대, 민무늬토기시대라는 말들도 등장한다. 무늬가 있건 없건 간에 비록 청동기나 철기를 만드는 데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땔감이 소요되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어쨌거나 이 모든 시대구분의 요체는 도구 제작의 재료와 기술을 반영한 생활수준의 발달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석기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숲은 말 그대로 생활의 공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시대구분이 있는데 왜 나무의 시대, 숲의 시대는 빠진 것일까. 제주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태초에 처음 태어난 곳도 숲이고, 의식주를 조달한 곳도 숲이었잖은가. 이것은 고고학적 발굴의 기술과 역사가 어느 정도 담당해야 할 문제다. 최근에는 석기시대 지층에서 도토리가 발굴된다거나 고대 왕릉에서 목관을 비롯한 수많은 목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깊은 바다 밑에 잠들어 있던 침몰선들도 인양되어 복원되고 있는 정도다.

최근 제주도의 자연을 말할 때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등은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가치들을 논할 때 지질시대에 대한 인용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나머지 숲과 나무의 역사가 갖는 중요성이 간과되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제주도는 지구사적 발달과정의 중요성 못지않게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있고, 그 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물론 앞으로도 무한히 살아가야할 곳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시대구분에도 지질학적 시대구분에도 숲의 시대, 나무의 시대는 없다. 이것은 그 중요성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늘 있는 항상성으로 인해 새로울 것도 없다는 정도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시대, 목축과 개간에 의한 파괴의 시대, 외세에 의한 침탈의 시대, 지형훼손의 시대가 없었는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을 찾아오듯이 제주의 숲을 찾는 탐방객이 어림잡아 연간 1000만 명은 될 것이다. 숲의 미래가치는 무한하다. 이제 숲의 역사, 나무의 문화사를 정립할 때다.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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