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노지감귤이 도입된지 105주년이 되는 올해 제주감귤의 위기론이 어느때보다 거세다. 도매시장 경락가격이 바닥으로 농약·비료값과 인건비, 유통비 등을 떼고 나면 농가는 이익은 커녕 손에 빚을 쥘 판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농민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2015년산 제주감귤은 수확기 잦은 비날씨로 상품성과 맛이 떨어져 소비자들이 외면하면서 소비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선 고육지책으로 '산지폐기'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상황은 달라지질 않는다. "감귤이 더 이상 행정이 정책을 주도하는 '정치작물'이 돼선 안 된다"며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세계 여러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감귤산업의 피해가 크고, 감귤 조수입(2013년 기준)이 9014억원으로 도내 농산물 총조수입(1조4953억원)의 60.3%를 차지하는 핵심산업이라 행정에서 손놓기도 쉽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제주감귤산업을 위해서는 '적정 생산량'을 산출하고 감산정책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된다. 행정에선 이미 감귤 감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워낙 민감한 문제라 선뜻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유통매장의 과일진열대를 가 보면 FTA에 따른 관세의 인하·철폐로 쓰나미처럼 밀려온 오렌지·키위·체리 등 외국산 신선과일이 가득 채우고 있다. 이에 따라 감귤의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2007년 16㎏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감소해 2024년엔 12.8㎏으로 줄어들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예상했다. 또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과일재배 한계선이 점차 북상하는 등 여러 여건이 달라진 상황에서 50만t이 넘는 생산량으로는 아무리 고품질감귤을 생산한들 제값받기가 버거워질 게 뻔하다.
일본도 1975년 366만5000t이었던 감귤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1990년 165만3000t, 2005년 100만5000t, 2013년에는 89만5000t으로 감산했다고 한다. 일본 내 1인당 연간 감귤소비량도 2009년 7㎏에서 2014년 6㎏으로 줄어들었다.
감귤 감산은 이해 당사자인 농가 입장에선 민감한 문제다. 때문에 감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가장 중요하고, 진행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감귤정책을 맡는 행정에서도 적정생산량 산출에서부터 폐원기준 설정, 감귤나무를 베어낸 곳에 어떤 대체작물을 권장할 것인지 해결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가 지난해 고품질 감귤생산과 유통혁신을 위한 감귤혁신 5개년 계획을 거창하게 내놨는데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감귤과 관련한 통계조차 없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통계는 어떤 정책을 세우는 가장 기초자료인데도 현재 제주의 감귤통계는 작형별·품종별 재배면적, 생산량, 조수입 등이 고작이다. 도내 감귤나무는 몇 그루인지에서부터 감귤나무의 수령, 감귤농업인의 연령대, 감귤 전업농과 겸업농 실태, 다른지방에 거주하는 외지인 소유의 감귤원 면적 등을 먼저 파악한 후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게 순서다.
가격 폭락 등 문제가 터져서야 허겁지겁 마련하는 단기처방으로는 제주감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힘겨운 과정이겠지만 제주감귤정책은 정확한 통계에 바탕을 두고 수립하는 게 맞다. <문미숙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