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끝)

[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끝)
(5) 제주섬의 지리학적 재발견 겐테
서양인으론 한라산 첫 등정 1950m 측정
  • 입력 : 2016. 03.07(월)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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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퀼른신문사의 아시아 특파원이자 지리학 박사
1901년 우여곡절끝에 한라산 등정 높이 정확히 측정
여행기 독일 유력지 1년여간 연재 제주 서구에 알려


생전의 지그프리트 겐테의 모습. 사진=한라일보 DB

"백인은 아직 한번도 오르지 못한 한라산 등정은 내 생애 최고의 영광이다. …누가 이곳 정상의 대기에서 바다를 찾았겠는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현상이다. 불가사의하게 시야가 확 트이는 정말 놀라운 현상이다. 바다가 하늘로 올라온 듯 하다. 해수면에서 거의 2000m 높이에 이르는 이곳까지 전체 수면이 활짝 열리고, 우리의 눈높이까지 밀려온 것 같다."

제주섬의 지질학적인 재발견과 보물 같은 가치를 평가받은 것은 20세기초 독일 베를린 출신의 지질학자이자 언론인인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1870∼1904)의 한국 여행기를 통해서였다. 그는 1901년 '이재수란'이 발생한 지 수주일 뒤 제주섬에 왔던, 당시 독일 퀼른신문의 아시아 특파원이자 지리학 박사였다. 그 이전에도 많은 서구인들이 표류하거나 제주섬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겐테가 남긴 제주에 대한 기록은 한라산을 직접 등정하고 높이를 측정, 1950m라는 사실을 밝힌데서 특히 주목을 받는다.

겐테는 영실 옛 등반로로 한라산을 올랐는데, 서양인은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라산을 처음 등정한 인물로 기록된다. 여행기에서 그는 숱한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오른 후 '무수은 기압계 두 개를 주의깊게 이용함으로써 나는 가장 가파른 곳 최외곽 분화구 가장자리의 높이가 6390피트(1950m)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제주도 한라산처럼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제공하는 곳은 지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 솟아 있는 한라산은 육지에서 100㎞ 이상 떨어져 있다. …이런 높은 산이 끝없이 넓은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그는 여행기를 자신이 재직중이던 퀼른신문에 1년여간 연재(1901년 10월 13일~1902년 11월 30일), 서양인들에게 제주의 존재를 알렸다. 겐테의 여행기가 장기간 연재된 쾰니셰 차이퉁은 당시 하루 4번 발행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신문이어서 파급효과도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겐테의 한국 여행기는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겐테의 여행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1904년)지 1년 뒤인 1905년 그의 동료 게오르그 베게너(Georg Begener) 박사에 의해 베를린에서 '겐테, 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면서 유럽에 한라산과 제주를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겐테의 한국 여행기 '겐테, 코리아'표지. 사진=한라일보 DB

겐테의 한국 여행기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조명돼 왔다. 미국의 데이빗 니멘스 교수는 '구미인들의 제주 답험기(踏驗記)'(탐라문화, 1988)에서 "겐테의 기록은 초기 구미인들의 제주 답험기들 가운데서도 백미"라고 평가했다.

겐테의 한국 여행기가 출간한지 꼭 100년만인 2005년 5월 독일 에어푸르트대학교는 개정판을 동아시아사 총서 일곱번째 책으로 내놓았다. 본보가 입수한 이 개정판에는 겐테가 직접 찍었던 제주관련 사진들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이 개정판은 글만 실렸던 초판과 달리 겐테가 구한말 1901년 제주에 왔을 때 직접 찍은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 석상을 표지 사진으로 싣고 있으며 1894년 당시 한라산과 제주의 구석구석을 외국어로 표기한 지도까지 실려 있어 흥미진진하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권영경씨가 2007년 2월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 1901'이라는 제목으로 겐테의 한국 여행기 번역서를 펴냈다. 이 번역서는 국내 언론이 앞다퉈 소개하면서 100년이 흐른 뒤에도 겐테의 한국 여정이 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겐테의 한국 여행기의 주 무대였던 제주에서는 정작 겐테의 행적이 묻혀지고 사장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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