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옹포리 포구서 만벵디까지 굵직한 역사 현장

[길 路 떠나다]옹포리 포구서 만벵디까지 굵직한 역사 현장
한수풀 역사순례길
  • 입력 : 2016. 03.25(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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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진성 성곽길 등 6개의 주제로 10㎞에 걸쳐 조성된 제주시 한림읍 '한수풀 역사순례길'에는 탐라시대 이래 이 땅에서 벌어진 굵직한 역사의 장면이 펼쳐진다. 표성준기자

포구에 내려 하늘에 이르는 길
명월진성 성곽길 등 10㎞ 구간
사제동행 프로그램으로 기획


이형상이 1702년 제작한 탐라순력도에는 모두 41개의 그림이 담겼다. 여기에 지금 한림읍 지역에 해당하는 그림이 3개나 포함됐다. 명월진성에서 활쏘기 시험장면을 그린 명월시사(明月試射), 명월진 군사들의 훈련모습과 말을 점검하는 모습을 그린 명월조점(明月操點)만 봐도 당시 한림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사슴을 생포해 비양도에 옮겨 방사하는 모습을 그린 비양방록(飛揚放鹿)에도 제주읍성의 서문에서 명월진에 이르는 해안 지형과 봉수·연대의 위치, 애월진·명월진·토성의 위치를 세밀하게 그려넣었다. 비양도가 눈앞에 바라다보이는 옹포리 포구에서 시작해 명월진성을 거쳐 만벵디묘역에 이르는 한수풀 역사순례길 도보 체험을 통해 과거 이 땅의 군사요새를 누비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집단 묘지인 만벵디 묘역의 위령비.

한수풀 역사순례길은 총연장 10㎞ 길이의 여섯 개 테마로 이뤄졌다. 여섯 개 테마는 ▷옹포리 포구에서 새마을회관까지 '마대기 빌레길'(1㎞) ▷새마을회관에서 월계정사터까지 '월계정사 배움의 길'(0.5㎞) ▷월계정사터에서 명월진성까지 '명월진성 성곽길'(0.5㎞) ▷명월진성에서 명월대까지 '청풍 묵향의 길'(2㎞) ▷명월대에서 고림동 교차로까지 '4·3 상생의 길'(3.5㎞) ▷고림동 교차로에서 만벵디묘역까지 '하늘 가는 길'(2.5㎞)이다.

마대기 빌레길의 시작점인 옹포리 포구는 1270년 이문경 장군이 삼별초를 이끌고 상륙해 고려관군을 제압한 뒤 제주 점거의 기틀을 마련하고, 1374년에는 최영 장군이 314척의 전선에 2만5000 대군을 이끌고 상륙해 목호 3000기를 섬멸한 격전의 현장이다. 제주 곳곳의 산마장(목장)에서 징발한 말을 반출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마대기'는 바로 말이 대기했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월계정사는 조선시대 서당이었던 월계정사와 개량서당인 우학당, 한림초등학교의 개교로 이어지는 배움의 역사 현장이다. 문영택 전 한림공고 교장이 재직 중 사제동행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한수풀 역사순례길의 조성 취지를 되새겨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조선시대 제주도의 방어체제는 3성(제주목·정의현·대정현) 9진 25봉수 38연대로 이뤄졌다. 9진 가운데 8개 진 책임자로는 종9품 관직인 조방장(助防將)이 임명됐지만 명월진성은 유일하게 종사품 무관직인 만호(萬戶)가 배치됐다. 옛 제주방어사령부(현 해병대 9여단)가 지난 1999년 명월진성 내에 역대 만호 112명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세워 명월진성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청풍 묵향의 길에서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월대, 무지개 모양의 다리인 명월교, 수령 수백년의 팽나무가 즐비한 명월천 등을 만날 수 있다. 4·3 상생의 길에서는 4·3의 아픔을 간직한 성담과 함께 당시 소개됐다가 집단 거주지인 이른바 '함바 터'로 복구된 고림동에서 제주 현대사 최대 비극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늘 가는 길의 종착지는 1950년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집단 묘지인 만벵디 묘역이다. 만벵디는 이 지역 사람들의 북망산천이었던 극락세계를 뜻하는 선소(善所)오름 바로 남쪽 아래에 자리 잡아 찾는 이들을 절로 숙연케 하는 순례지이기도 하다.

올레길 열풍에 힘 입어 곳곳에서 많은 길들이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을이름이나 지명 뒤에 올레길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갖다붙이는 사례도 목격되지만 지역의 자연과 문화, 역사적 특성을 살린 길도 생겨나고 있다. 한수풀 역사순례길은 탐라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섬의 굵직한 사건사고를 간직한 드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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