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2)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2)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
'덕이 있는 물' 모산이물 품어온 세계자연유산 마을 자부심
  • 입력 : 2016. 03.29(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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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대오름이 보이는 알덕천 가는 길 풍광(위)과 마을회관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마을 전경(아래).

솥·보습 등 만들던 제주 동부지역 유일의 불미터
4·3소개령 이후 마을 재건 위해 처절한 시절 보내
"행정의 종계장 허가는 마을 발전 전략에 날벼락"



세계자연유산 지구 마을 중에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주민들의 자부심은 자연환경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다. 오름으로 지경을 잡으면 위에서부터 식은이오름, 종재기악, 북오름, 흙붉은오름, 어대오름이 있다. 옛 이름은 검흘(琴屹)이라고 호칭했는데 그 뜻은 비가 오면 그 토질이 검고 질퍽질퍽하기 때문에 검을, 검얼이라고 불리게 됐고 지세가 평탄하지 않아서 우뚝 우뚝한 돌동산이 많아 흘(屹)자를 쓰게 됐는데 선흘(善屹), 와흘(臥屹), 대흘(大屹), 남흘(南屹)등 지명과도 통한다는 것이다. '모산이물' 이라는 못(池)이 있는데 주민들은 항시 이 물이 '덕이 있는 물'이라 해서 '德泉里'라 정했다는 것. 상덕천(上德泉)은 고씨가 15대, 하덕천(下德泉)은 조씨가 12대 이어온 것으로 보아서 덕천리 창촌은 450년이 될 것으로 보며 현재 상덕천은 20세대, 하덕천은 6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덕천리의 지세는 바위가 많고 굴이 많다는 데서 이는 행사왓(行蛇왓) 사근이동(蛇近이洞) 사수락(蛇首落) 사수두(蛇首頭), 노사수(老蛇水 : 모사니물) 등 뱀사(蛇)자가 붙은 지명이 많음은 굴과 뱀과의 관계가 있다는데 뜻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연유산마을의 운치를 보여주는 모산이물.

총면적은 20.71㎢로 구좌읍에서는 송당리(36.27㎢) 다음으로 큰 면적인 덕천리는 준범죄없는마을, 향회재현시범마을, 화재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자연마을로 상덕천, 하덕천으로 구성되며 주민들은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곳. 어대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이 오름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만장굴과 비자림, 산굼부리를 연결하는 중산간 마을로 덕천∼만장굴간 왕벚나무로 조성된 가로수의 아름다운 공원, 깨끗하고 맑은 연못 '모산이못'이 마을의 자랑이다. 4·3사건 전까지 큰곶도(대편동) 된밭(化田) 등에는 솥과 보습, 뱃(밭을 일구는 쟁기의 부속품) 등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으며 이는 제주 동부 유일의 불미터였다. 이대진(79) 어르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대오름 동쪽 양질의 찰흙이 있는 곳에서 기와를 굽고 쇳물을 녹여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인근 오름에서 땔감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덕천 마을은 주로 기와집들이 많은 동네였다고 한다.

대나무와 자갈로 다져진 길이 옛 주거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어대왓 부근.

다른 마을이 주로 초가집이었던 것에 비하면 부자마을이었다는 의미다." 지금은 간혹 농경지에서 그 기와 파편만이 발견되지만 옛날에는 솥과 농기구를 사러 사람들이 찾아왔던 마을. 중산간 마을이라 목축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독특한 역사가 서려 있었다. 4·3 피해를 많이 본 마을이다. 김용(77)노인회장은 "소개령 이후 김녕리 등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서 5년을 살다 올라왔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대부분 죽었고 마을을 재건해서 살아가기 위해 처절한 시절을 보냈지요. 연좌제 피해는 더욱 아픈 상처를 줬습니다." 상덕천과 하덕천 할 것 없이 4·3 이전에 주민들이 살았던 집터들이 보인다. 그 아름답던 사람들의 마을은 정치이념의 광풍에 무너지고 다시 돌아와 일어선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시켜 나간 것이다.

양영환 이장

양영환(53) 이장이 마을 발전과 관련한 견해는 이렇다. "저희 마을은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로서 청정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사명감으로 주민들이 뭉쳐있습니다. 농경과 목축이 현재라면 미래는 관광산업과 접목한 고부가가치 생활터전으로 바뀔 것입니다. 방대한 마을 면적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자연의 향기는 덕천리가 가진 최대의 자산입니다. 그 자산이 최근 침탈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종계장을 우리 마을에서 하기 위해 행정절차를 밟는 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행정당국에서는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현실입니다. 업자의 법적 권리는 인정하고 주민들의 생활권은 인정하지 않는 처사에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타 마을에서 축산 분뇨 냄새로 인하여 마을발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정보를 다량으로 수집하여 주민들이 강력 항의하고 나선 현실이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따지는 것이 있었다. 마을회에서 하고자 했던 사업은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이라고 해서 불허하는 행정당국에서 닭 분뇨 냄새로 공기의 질 저하가 분명한 일에는 허가를 하겠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도 않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종계장 사업자의 권리가 있다면 주민들의 생활권, 행복추구권 또한 소중한 가치로 판단하고 동의 절차를 밟도록 해야 옳다는 것이다. 세계자연유산마을로 지정되면서 부푼 꿈을 가지고 관광산업과 연계한 발전 전략을 짜고 있었던 마을회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상황. "이 것이 원희룡 도정의 협치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하는 마을 원로들의 표정에서 울분을 목격하였다.

늙은 팽나무 겨드랑이에 숨은 어린동백. 4·3 당시 소개령으로 타버렸던 상덕천에서 촬영했다.

이성만(60) 개발위원장은 "마을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60만 평에 달하는 토지를 활용하여 태양광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펼치고자 합니다. 그 수익으로 노인복지 사업은 물론 젊은 부부들이 들어와 아이들을 낳고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 시킬 것입니다." 땅 부자 마을 소리를 들을만 했다. 관광 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토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기대와 희망이 있다는 것. 고명일(42) 청년회장은 이번 종계장 문제에 대하여 끝까지 싸워서 덕천리가 가진 소중한 환경적 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이어갔다. "민간끼리 재판을 해서 결정하라며 뒤로 빠지는 행정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울분과 함께. 덕천리는 세계자연유산 마을이다. 그러한 주민들의 자긍심을 파괴하고 온전하게 덕천리의 환경을 지킬 수 있을까?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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