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제주 시단의 맹주' 매계의 문학세계

[책세상]'제주 시단의 맹주' 매계의 문학세계
제주교육박물관 '국역 매계선생문집' 펴내
  • 입력 : 2016. 08.12(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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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제자이면서 조선시대 말기 제주를 대표하는 문장가인 매계(梅溪) 이한진(李漢震·1823~1881)의 글을 모은 '국역 매계선생문집'이 나왔다.

그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서울에 갔을 때 목인배 승지로부터 "호남 선비 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제주를 넘어 당시 조선을 대표할 만한 문장가였다. 요즘도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창작에 활용하는 영주십경이 바로 그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10곳을 선정해 처음으로 이름을 붙이고 그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해 남긴 것이다.

국역매계선생문집의 서문을 쓴 향토사학자 오문복 선생은 과거 제주에 문학이 성한 이유를 자연에서 찾는다. 제주인들은 아침저녁으로 명산을 바라보며 살고 가는 곳마다 절경을 끼고 다녀 지령(地靈)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풍류를 아는 관리나 난세를 피해 숨어 살던 선비와 주고받은 문서들이 집집마다 궤짝에 가득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문헌들은 임진왜란의 화를 피했지만 불행하게도 무자년(1947년) 변란에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런 이유에서 매계시집의 이번 국역과 출간을 오문복 선생은 '일양내복(一陽來復·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옴)'의 형국에 비유한다.

이 문집은 시집이지만 여러 편의 문장도 함께 실려 "당대 제주 시단의 맹주"였던 매계 문학의 전모를 살필 수 있게 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신촌초등학교 교정에 매계 유적비가 남아 있다. 그 비문은 매계를 이렇게 소개한다. "선비를 어질다고 칭찬하는 것은 참으로 그 행위에 의거하는 것이지 글에 의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도 또한 도를 싣는 그릇이요 덕의 아름다운 광채니, 그 또한 작은 것이라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선생께서 보이신 모범된 품행은 이미 삼강행실도에 오를 만하고, 문장 또한 남국의 으뜸이시니 곧 선생은 대개 어진 선비이며 고운 글재주를 갖춘 분이로다."

이 비문에는 매계의 품성을 알려주는 일화도 담겨 있다. 1875년(고종 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마친 그는 슬픔이 깊은 나머지 병이 들었다. 자신의 병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아버지 제삿날이 되자 가족들에게 "오늘은 아버님을 모시고 돌아가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힘을 내어 제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과 한날이었다.

이 문집은 매계의 시뿐만 아니라 인생역정과 당시 제주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제주교육박물관이 올해 첫 번째 출간한 향토교육자료집이다. 제주에서 국어 교사를 역임한 향토사학자 김영길씨가 국역했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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