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09) 제주시 외도동 도평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09) 제주시 외도동 도평리
넓은 평지에 들어앉은 벵듸… 하천 녹지를 생태공원으로
  • 입력 : 2016. 11.08(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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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남쪽 언덕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위)과 마을회관 옥상에서 도평초등학교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아래).

배움의 끈 놓지 않았던 명진학숙 자리에 도평초
중산간-해안에 낀 위치 탓인지 4·3 피해 규모 커
"인도 없어 사고 위험… 남북 연결하는 도로 필요"



먼저 냇가들이 떠오르는 마을이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2㎞정도 되는 지역에 하천이 4개나 있으니 온통 냇가로 이뤄진 느낌을 준다. 그 굽이치며 형성된 공간적 요인까지 합하면 참으로 독특한 마을 형세다. 원장천을 사이에 두고 이호2동, 노형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광령천을 사이에 두고 애월읍 광령리, 외도1동과 경계를 이룬다. 광령천과 원장천 사이 마을인 것이다. 남쪽은 노형동 월산마을과 해안마을이 있고, 북쪽으로는 이호동 현사마을과 외도1, 외도2동, 내도동과 마주하고 있다. 주변 마을이 8곳이나 되는 곳도 흔치 않다. 마을 안을 동서로 3등분 지으며 흐르는 어시천과 도근천이 주변에 나무들을 끼고 친자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많은 냇가를 특징 이미지로 해 마을 이름이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 이름은 '벵듸'다. 넓은 평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 한문으로 평대(坪代)라고 부르다가 구좌읍 평대리와 구분하기 위해 도평대(都坪代)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代)를 생략해 도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상동, 하동과 함께 자연부락으로 신산마을, 사라마을, 창오랭이마을이 있다. 4·3 당시에 잃어버린 왯벵듸마을은 기억 속의 도평리로 남아있다.

수령 700년을 자랑하는 장수 소나무가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김기숙(79) 노인회장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족보나 비문을 통해서 보면 350여 년 전에 해풍 김씨와 전주 이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후에 풍천 임씨 등이 살면서 마을이 점차 커졌다고 합니다. 마을이 번창해지면서 아래쪽으로 이주하여 사는 주민들이 많아지게 되니 알동네가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 학식 있는 분들이 많아서 서당에 글을 배우러 인근 마을 학동들이 도평리 서당에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마을 전통이 있어서 제주에서 3번째 인가 받은 학교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름이 명진학숙이었지요. 지금 도평초등학교 자리입니다." 수령 700년 된 소나무가 있고, 500살 가까이 되는 팽나무들이 흔하던 마을이라는 것은 문헌기록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증거이기도 하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신학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기에 학교 인가를 받기 위해 당시 전라도 광주까지 마을 유지들이 3번이나 올라가서 기어코 학교 인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마을공동체의 지향점이 어떠한 가치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도평초등학교 앞에 있는 초대형 거북바위.

마을 규모에 비해 4·3으로 당한 피해가 엄청난 마을이기도 하다. 중산간 마을과 해안 마을 중간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은 더욱 참혹한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사망자만 144명, 실종자까지 포함해 180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1904년 삼군호구가간총책 기준으로 110호에 남자 200명, 여자가 202명이라는 기록과 비교하면 마을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성훈 마을회장

김성훈(56) 마을회장은 숙원사업과 당면과제를 이렇게 밝혔다. "마을을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에 교통량이 급증하는 현실이지만 인도가 없습니다. 도평초등학교 학생 수만 213명이 넘는 현실에서 교통사고 위험까지 염려되는 불안한 도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도로 개설 당시에 급조해서 차량 위주로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사람 위주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겠습니까? 장기적으로 중산간도로와 일주도로를 연결시키는 도로가 있어야 생활 불편이 없어질 것입니다. 도농복합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마을 발전을 위해서는 마을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돼야 하겠습니다." 주변에 많은 마을들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도로는 있지만 협소하여 마을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임태근(52) 마을회 총무의 주장은 마을의 특성을 강점으로 살려내자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하천이 많은 마을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 길이 10㎞에 달하는 이 자원을 살려서 마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노형과 외도 지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마을이 앞으로 도시화 되어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관계로 하천을 끼고 양 옆에 수목지대를 좀 더 가꿔서 생태하천공원화 한다면 가장 매력적인 환경을 가진 생활공간으로 성장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행정적 계획과 지원이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투입되어야 할 일이다. 이러한 목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면 주민들의 자발적 의지와 힘을 합하여 제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천과 수목이 어우러진 공간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건천의 바위들과 오랜 기간 벗해 온 나무들.

박재필(54) 청년회장이 설명하는 마을 발전에 대한 고민은 이렇다. "도심 지역과 가까운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지속적으로 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을 내부의 길은 대부분 농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주차문제가 심각합니다. 도로 못지않게 공영주차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시 지역으로 생각하면 구부러진 좁은 골목길이 마을 전체에 퍼져있는 현실에서 도시는 팽창하고 도시화된 두 지역 사이에서 생활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은 극복 과제임이 분명하다. 김영효(71) 전 마을회장에게 '100억원을 가지고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을 하라'고 전권을 주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 지 물었다. "대형 테니스장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면 마을 복지기금을 엄청나게 벌 수 있겠지요. 마을 주민들도 운동을 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도시화된 주변 지역을 의식한 사업적 마인드가 놀랍다. 도평리의 활로를 이런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는 마을 원로의 혜안이기도 하고. 한 세대 뒤 도평리는 도시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었다. 마을의 중심 자원인 하천 녹지가 공원화된 아름답고 매력적인 전원도시의 꿈이 현실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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