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한라산 구상' 후일담]백록담 전설 속 '백록' 목격 남다른 인연

[문재인의 '한라산 구상' 후일담]백록담 전설 속 '백록' 목격 남다른 인연
  • 입력 : 2017. 05.10(수)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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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낙선 후 자연인 신분으로 한라산 등반
산행 중 지지자들 응원에 눈시울 붉히기도
한라산행 후 11일 만에 대권 재도전 첫 시사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3년 5월 8일, 아내 김정숙씨와 함께 제주를 찾아 한라산을 오른 일이 있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의 패배를 맛본 지 140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72일째 되던 이날 문재인은 한라산과 남다른 인연을 쌓게 된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간 그는 낙선 후 처음으로 대권 재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남겼다. 한라산 등반 11일 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4주기 추모 문화제에서였다. 문재인의 이른바 '한라산 구상'이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당시 한라산에서 어떤 구상을 했기에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고 규정한 대한민국 대통령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을까? 한라일보는 문재인의 '한라산 구상'을 있게 한 '한라산 체험' 사진을 확보해 당시 산행을 함께했던 제주도민들의 기억을 되살려 소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3년 5월 한라산 백록담에서 목격한 흰 노루. 이후 '백록' 목격담을 확산시킨 이 흰 노루는 한라산 1850m 고지 남벽에서 한라산국립공원 순찰대원 김동현씨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5월은 노루가 털갈이를 하는 시기여서 하얗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다른 털갈이 노루에 비해 더욱 두드러진다면서 알비노(백색증)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사진=김동현씨 제공



문재인의 한라산 체험은 아내 김정숙씨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2013년 4월 27~28일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제주문화서포터즈-봄날의 제주 1박 2일' 답사기행에 참여했던 김씨는 버스에서 처음 만난 강문규 한라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문재인의 아내"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문재인의 한라산 등반을 안내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강 소장은 한라일보의 대하기획 '한라산대탐사' 탐사단장을 역임하고, 퇴임 후에는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를 설립해 '한라산 총서'를 펴낸 한라산 전문가이다.

이렇게 진행된 문재인 부부의 한라산 등반에는 강 소장과 오희삼 당시 한라산국립공원 청원경찰, 고유기 더불어민주당제주도당 정책실장이 함께했다. 낙선했지만 여전히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이고, 제주도 지역구 국회의원 3명 모두 같은 당 소속이지만 정치인을 배제한 채 조촐한 등반에 나선 이유를 강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낙선 후 자연 속에서 치유하기 위해 한라산을 찾았던 것 같아요.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한라산국립공원 사무실에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오희삼씨와 고유기씨는 제가 개인적으로 요청했어요." 오씨는 등반로 안내를 맡고, 고씨는 도시락 담당이었다.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부부와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사진=오희삼씨 제공



조용한 산행을 의도했지만 등반객들이 그를 놓칠 리 없었다. 뒤를 따라오던 한 여성이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가족과 함께 등반에 나섰던 이 여성은 앞서가던 남편을 부른 뒤 문재인을 만난 기쁨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우리 아빠(남편)는 대선 후에 너무 분하고, 한국에 살고 싶지도 않다면서 이민 가자고 했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온 그 남편도 문재인을 부둥켜안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때 일행들은 문재인의 눌러쓴 모자 아래로 붉어진 눈시울을 목격했다. 강 소장은 문재인이 당시 연예인급 인기를 누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몰려들어 껴안으면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요청해왔으니 감정이 복받쳤을 거예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문재인은 이날 산행 중에서도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라다크와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에 이어 지난해에는 64세의 나이에 5900미터 고지의 랑탕까지 네 번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경험한 그다. 한라산은 오전 10시쯤에야 오르기 시작해 당초 정상까지 등반할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문재인 부부의 탁월한 체력에 감명(?)받은 강 소장은 내친 김에 정상까지 오르자고 제안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치매설과 스탠딩 토론 거부 등 유독 문재인의 건강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많이 떠돌았다. 문재인과 한라산 등반에 나섰던 이들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코웃음쳤다"고 했다.

강 소장은 문재인이 한라산 지천에 피어난 들꽃에 관해서도 제주도민들을 능가하는 전문가적 식견을 드러냈다고 회상했다. "풀꽃을 너무 잘 알더라고요. 꼭 비유해서 설명을 하는데, '히말라야 어디어디에서 보이는 꽃과 같다'고 설명하는 식이었어요. '아마 한라산도 고산지대여서 이런 꽃이 보이는 것 같다'면서 특히 꽃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어요." 제주도민들은 이날 산행 중 한국의 들꽃은 모르는 꽃이 없다고 할 만큼 전문가 수준이라는 문재인으로부터 한라산의 풀꽃에 대해 한수 배웠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뒤 한라산 등반에 나선 문재인은 산행 중 만난 등산객들이 부둥켜안으며 훗날을 응원하자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오희삼씨 제공



그렇게 오르다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백록담을 내려 보던 일행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백록이다!" 남벽 정상 분화구 안 풀밭에 흰 노루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네 마리로 구성된 노루 가족 중 관모양의 웅장한 뿔을 단 수컷 노루는 몸뿐만 아니라 뿔까지 온통 하얀색이었다. 제주도에는 신선이 백록을 타고 사슴떼를 몰아 물을 먹이러 온다는 전설이 깃든 백록담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를 보면 백록은 경사롭고 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져 산채로 잡아 임금에게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백록이 실제 존재했는지는 증명할 수 없는 일이고, 전설 속의 한라산 백록은 흰 사슴이지 흰 노루가 아니다. 일행들은 "흰 노루라 쓰고, 백록이라 읽는다"는 말로 감흥을 간직키로 했다. 그리고 일행 중 누군가 문재인에게 말을 건넸다. "대선 전에 봤으면 좋았을 걸요." 눈물은 잘 드러내는 문재인이지만 기쁨은 애써 숨기고 싶었는지 대답이 짧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자 그 누군가가 다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백록을 봤으니 다음에는 될 겁니다." 역시 짧은 답이 돌아왔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문재인과 동행했던 오희삼씨는 전문가 수준의 촬영 솜씨를 지니고 있지만 흰 노루를 사진에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 분화구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이후 한라산국립공원 동료 직원들에게 목격담을 전하고 촬영을 부탁했다. 그로부터 10여일을 전후한 시점에 순찰대원 김동현씨가 백록담과 남벽 사이에서 흰 노루를 발견하고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당시 한라산 근무 15년 경력의 오씨는 흰 노루를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산행 중 만나는 등산객들마다 문 후보를 껴안고 울다가도 다들 훗날을 응원해줬어요. 그리고 나서 흰 노루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하늘의 뜻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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