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7)]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7)피구실사리의 등장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7)]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17)피구실사리의 등장
양치식물로 분류됐던 피구실사리… 최근 석송식물로 구분
  • 입력 : 2017. 06.05(월) 00:00
  • 조흥준 기자 chj@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코그노칸산에서 바라본 초원스텝과 모래땅.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피구실사리… 한반도 7종, 남한 6종 분포
왜구실사리·바위손은 한라산에서만 발견

이 산은 바윗돌들로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지금은 이렇게 건조한 곳이지만 그 어느 옛날에는 매우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을 것 같은 지형이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1997년 이래 식생은 잘 보존된 듯 보인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그루터기들은 그 전까지는 무분별하게 벌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식생은 얼핏 봐도 산림스텝과 초원스텝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건조한 산림스텝도 매우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산은 보호지역이면서 국립공원임에도 조사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아니면 공식적으로는 발표하지 않고 해당기관이 관리를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공식적인 식생조사 자료는 겨우 한 편을 찾을 수 있었을 뿐이다.

자료를 참고하면 가장 낮은 지역은 해발 1165m, 최고봉은 1967m이다. 전체 면적의 63%는 산림, 나머지 37%는 해발 1400m 이하의 초원이다. 크게 5개의 식생으로 구분되는데 비교적 고지대는 자작나무와 구주사시나무(포플루스 트레물라)숲으로 되어 있다. 나무의 높이는 대략 10m 정도다. 계곡은 덤불형태의 느릅나무숲이 남아 있다. 산허리쯤에는 바위틈에 형성된 키 작은 나무들의 덤불과 스텝 초원식생으로 되어 있다.

좀미역고사리(Polypodium virginianum)

피구실사리(Selaginella sanguinolenta)

한라산에 자라는 왜구실사리(Selaginella helvetica)

저지대 스텝은 건조스텝과 초원스텝이다. 그보다 낮은 곳은 모래언덕과 소규모 습지식생으로 돼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는 습지식생과 모래언덕을 탐사했다. 비교적 물기가 많은 곳에서 갯봄맞이꽃을 비롯한 염생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모래언덕에는 자작나무과와 버드나무과, 그리고 크게 자란 비술나무들을 봤다.

잠시 지난 회에 소개한 한라산의 생열귀나무를 떠올리면서 좀 더 규모가 큰 바위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양치식물을 만났다. 고란초과 식물로 한라산의 온대낙엽수림대에서 간혹 보이는 나사미역고사리를 닮았다. 군락의 규모가 꽤 크고 포자낭군도 잘 발달했다. 식물체가 싱싱하고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수분조건이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 자료에는 북한에 분포하며 우리말 이름은 좀미역고사리로 기재되어 있다. 주로 바위나 나무 등걸에 착생한다.

이런 건조한 스텝지역에서 양치식물을 만나다니… 탐사대는 기대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 기대는 너무도 빨리 찾아들었다. 불과 몇 발짝도 나아가기 전에 역시 바위틈에서 석송식물을 만났다. 마치 바위 겉에 맺힌 이슬이 날아갈까 바짝 붙어 자라는 피구실사리(셀라지넬라 상귀놀렌타)다. 종소명이 '핏빛을 띠는'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붙인다. 줄기가 특히 겨울철에 붉은 색 또는 갈색을 띤다.

한반도에는 이 종류들로 7종이 알려져 있다. 그 중 남한에서 볼 수 있는 종은 6종, 이 중에서도 왜구실사리와 바위손은 한라산에서만 자라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만난 피구실사리는 중국의 북부와 서부,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 카슈미르, 네팔,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분포한다. 과거엔 이 식물들을 양치식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양치식물과는 아주 다른 석송식물로 구분하고 있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지구상 최초의 관속식물

학자들 식물 계통분류 작업 중 …석송식물은 이끼식물에 가까워

양치식물은 꽃과 씨가 없이 포자로 자손을 남기는 관속식물로 전 세계에 1만560종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배수체와 반수체라고 하는 세대가 별도로 독립생활을 하는 독특한 생애주기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배수체인데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정자와 난자는 반수체다. 이들은 독립생활을 할 수 없고 배수체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먹는 고사리는 배수체다. 이들의 몸에서 반수체의 포자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자라서 독립적으로 엽록체를 가지고 생활한다. 여기에서 다시 난자와 정자가 만들어져 수정하면 다시 배수체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양치식물보다 원시형의 육상식물들은 모두 이런 생활양식을 갖는다.

식물은 대부분 물과 양분의 이동통로가 되는 관다발이 있다. 관속이라고도 하는 이 조직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은 뿌리로,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광물질들은 잎으로 서로 섞이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식물에서는 이 조직이 없거나 아주 단순한 원시형태로 되어있다. 양치식물은 포자로 생식한다는 점에서는 이끼식물과 닮았지만 이끼식물에는 없는 관다발이 있다는 점에서는 꽃피는 식물과 닮았다. 그래서 과거에는 포자로 생식하면서 관다발이 있는 식물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양치식물이라고 했다.

문제는 고도로 해상력이 높은 현미경이 등장하고, DNA분석과 해석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몰랐던 많은 양치식물의 비밀들이 밝혀지고 있다는데 있다.

지금 이곳에서 발견된 피구실사리는 양치식물일까? 얼마 전까지도 당연히 양치식물로 구분했다. 그러나 연구결과 이들은 여타의 양치식물들과 다른 특징들이 밝혀졌다. 특히 관다발 체계가 독특하게도 아주 단순하거나 원시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자유전학적 분석 결과에서도 많은 차이를 갖고 있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종들은 나머지 양치식물보다 오히려 관다발이 없는 이끼식물에 더 가까웠다.

최근 세계적인 양치식물학자들이 모여서 양치식물 계통분류 그룹을 조직하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해 2016년도 '시스테마틱스 엔드 에볼루션(분류 및 진화)'이라고 하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피구실사리와 같은 특징을 갖는 종들이 전 세계적으로 1338종(3목 3과 18속)이 있으며 이들은 석송식물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한 양치식물은 종자식물과 매우 밀접한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석송식물은 양치식물과 종자식물을 모은 집단과 근연관계를 보였다. 비유하자면 양치식물은 종자식물과 4촌, 양치식물과 종자식물은 석송식물과 6촌 정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종자식물(피자식물)이 지구상에 나타난 건 1억2000만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비해 석송식물은 4억2000만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관속식물들이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86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