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5) 현택훈 시옷서점 대표

[책과 사람] (5) 현택훈 시옷서점 대표
"시를 파는 서점, 믿기지 않나요?"
  • 입력 : 2017. 06.3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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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서점인 '시옷서점'을 운영하는 현택훈 시인. 만우절인 지난 4월 1일 거짓말처럼 문을 연뒤 동네 서점이자 문화공간으로 '시옷서점'을 꾸려가고 있다. 진선희기자

시인이 운영하는 시 전문 서점… 이달의 시집·블라인드 북 코너


지역 시인 키우려 헌책 판매도… 동네서점으로 문화공간 역할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30년전 6월의 풍경이 그랬을까.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던 시절’을 노래한 듯한 시집이 눈에 띄었다. '6월의 시집'으로 선정해 도드라지게 진열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1989년 초판을 찍어낸 뒤 이 땅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오래된 시집을 이제 막 생겨난 서점에서 만났다.

시인이 운영하는 시(詩) 전문 서점, 제주시 인다13길(아라1동) 연립주택 입구 1층에 있는 '시옷서점'이다. 지난 4월 1일이었다. 서점을 운영하는 현택훈 시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서점 일기에서 그 날을 '거짓말 같은 하루였다'고 써놓았다. 중장비로 땅을 파헤치는 공사가 한창인 신도시 골목길에 왜 하필 책방이냐, 왜 하필 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인 듯 했다.

'시옷서점'의 이달의 시집 코너와 블라인드 북 코너.

시란 글자의 초성을 딴 시옷서점엔 현 대표가 영향을 받았던 국내 시인들의 시집이 많다. 어느 시절 문학청년이라면 한번쯤 읽어봤을 시집들의 얼굴이 반갑다. 제주 시인들의 시집도 따로 모아놓았다. 제주에 있는 시 전문 서점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현 대표는 "제주 시인 시집들을 더 많이 비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인들이 쓴 산문집, 시 비평집도 매대에 놓였다. 시집 글귀를 적어 밀봉된 봉투 겉에 붙여놓은 뒤 그걸 보고 선입견 없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블라인드 북'도 만들어 뒀다.

한쪽 벽은 '시집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인 서가로 꾸몄다. 헌 책을 파는 서점 속 서점이다. 시집박물관은 현 대표가 아내인 김신숙 시인과 꿈꿨던 공간의 명칭이기도 했다. 문학관이면서 도서관이자 영화관 같은 곳을 구상했었다. 그 꿈은 유예됐지만 중고 서적을 팔아 또다른 꿈을 그리려 한다. 판매 수익을 시 전문 무크지 '시린 발' 발간에 쓰기로 했다. '시린 발'은 발표 지면을 얻기 어려운 지역 시인들을 위한 비정기 간행물이다.

서점 문을 연 지 3개월. 현 대표는 '사람들이 찾기 힘든 곳에 있는 서점'이라고 했지만 그런 단점이 장점으로 바뀐 듯 했다. 일부러 방문하는 손님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편한 차림으로 오가다 들르는 동네 서점이 되고 있다.

'시옷서점'의 시집박물관 코너. 기형도·박인환 시인의 사진이 붙어있는 벽면 옆으로 '시인의 책상'이 놓여있다.

이 서점에선 책만 팔지 않는다. 시가 있는 문화공간이다. 현 대표 부부와 인연이 있는 한라산문학, 라음문학회 등이 정기적으로 서점에서 만남을 갖는다. 서점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서점에서 좋아하는 시를 따라쓰며 창작을 위한 걸음마를 떼어놓는 필사 모임을 이어간다.

서점 간판의 불빛은 일주일에 네 번, 하루 네 시간 반짝인다. 현 시인 부부가 낮 시간엔 독서논술 등 다른 일을 해야 하는 탓에 토·일·월·화요일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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