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막에 분포하고 있는 가는칼륨나무 식생과 그 뒤로 보이는 알타이 산맥의 모습.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식물체내 칼륨 많이 갖고 있어 사막 등 혹독한 환경서 잘 견뎌제주도 해안가에는 유사종인 수송·방석·해홍나물 등 분포
김찬수 박사
사막나무숲을 통과한 지 한 시간 남짓, 전혀 새로운 풍광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목적지 알락 하이르한산까지 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이 산은 진입하는데 험한 계곡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과연 그 험로를 뚫고 정상에 설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므로 발길을 재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밖으로는 자꾸 새로운 종일 듯한 식물들이 나타나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지나쳐온 터였다. 그러나 이 이상한 식물들로 채워진 이곳만은 아무래도 보고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무릎높이도 채 되지 않는 푸른색의 아관목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이 식물군락의 한 가운데를 뚫고 달려온 것이다. 멀리 우리의 목적지가 있는 알타이산맥의 남쪽 변두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누가 심고 가꾼 것도 아닌데 이 바싹 마른 사막에 이토록 싱싱한 식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란단 말인가. 색깔도 독특하게 연두색을 띠고 있어서 한층 더 싱싱해 보였다. 마치 이른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듯 한 분위기다.
비름과에 속하는 가는칼륨나무(칼리디움 그라칠레,
Kalidium gracile)라는 종이다. 학명 중 칼리디움은 '식물체 내에 칼륨을 많이 갖고 있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선 우리말 속명을 칼륨나무속으로 했다. 그라칠레는 '가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남동유럽에 5종, 중국에 5종, 몽골에 4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에 이 속 식물은 없다.
가는칼륨나무
지상 20㎝ 내외의 굵은 줄기 상단에서 무수히 많은 줄기가 나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뿌리에서 덤불 같은 줄기들이 나온 것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줄기는 회갈색을 띠고, 일년생의 가지들은 황녹색 또는 연두색을 띠고 있다. 줄기가 매우 연약해 쉽게 흔들리고 밑으로 늘어진다. 5㎜ 이내의 간격으로 마디가 형성돼 있다. 잎은 거의 발달하지 않아 흔적처럼만 보인다. 이 식물 역시 어린 줄기의 형태로 보면 마치 풀 같은 식물인데, 오래된 줄기는 말 그대로 단단한 나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진주수송나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식물이 또 있다. 진주수송나물(살솔라 파세리나,
Salsola passerina)이라는 종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속 식물이 있다. 수송나물속이라고 하는데 수송나물, 솔장다리, 나래수송나물 등 3종이 있다. 제주도에는 수송나물 1종이 바닷가에 자라고 있다. 전 세계에 130여 종 정도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분포하고 북미에도 몇 종이 자란다. 몽골에는 11종이 자라고 있다. 학명 중 파세리나는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네덜란드 사람으로 식물에 대해 자세한 그림을 많이 남긴 크리스핀 드 파세(1589~1637)를 기념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뿔나문재
이 종은 몽골을 제외하면 중국에 분포하는데 중국이름은 진주저모채다. 직역 하면 진주돼지털나물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수송나물속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진주수송나물'로 이름 지었다. 이 식물이 마치 진주목걸이를 연상하므로 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높이는 30㎝ 이하다. 전체에 가늘고 짧은 두 갈래의 털로 덮여 있다. 굵은 나무모양의 줄기 끝에서 새로운 줄기가 많이 나와 덤불을 이룬다. 어린줄기는 연한 황색을 띠지만 회록색의 잎으로 싸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회록색을 띤다. 잎은 송곳모양이거나 삼각형모양인데 길이 3㎜ 이내로 매우 짧다.
역시 이 일대서 관찰되는 유사한 종으로 뿔나문재(수아에다 코르니큘라타,
Suaeda corniculata)가 있다. 나문재속이다. 전 세계에 약 100여 종이 주로 아시아, 유럽, 북미에 분포하며 각 처의 바닷가에 자란다. 몽골에 9종, 중국에 20종, 일본에도 3종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는 5종이 분포하는데 제주도에도 나문재, 방석나물, 해홍나물 등 3종이 있다. 이렇게 제주도 해안에 분포하는 종들과 유연관계가 아주 가까운 종들이 이렇게 먼 고비사막, 알타이 산맥 일대에서 만난다는 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르니큘라타는 라틴어로 '뿔모양의'라는 뜻이다. 꽃덮이조각에 뿔 모양의 돌기가 난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
바닷가 모래땅이나 진흙이 섞인 바닷가에 자라는 부드러운 풀들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수송나물속, 나문재속 식물이 이렇게 강건한 나무로 이런 혹독한 환경에도 자라고 있는 것을 볼 때 생물의 다양성, 진화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송관필·김진·김찬수
[퀴노아와 카니와]
비름과는 지금은 명아주과를 흡수해 165속 2040 종을 거느리는 과가 되었다. 대부분은 1년생, 다년생 초본 또는 아관목이며, 여타의 종들은 관목, 아주 드물게 덩굴식물 또는 교목이다. 다육식물도 있다. 많은 종들이 염생식물이며, 염분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종들이 많다. 일부 즉, 시금치, 사탕무 등은 채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과의 일부 종의 씨앗은 식량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 중 퀴노아(quinoa)와 카니와(kaniwa)는 유명하다. 퀴노아는 명아주의 일종인 체노포디움 퀴노아를 말한다. 퀴노아라는 이름은 모든 곡식의 어머니라는 뜻의 고대 잉카어에서 유래했으며 영양이 풍부해 아마란스와 함께 잉카제국의 슈퍼 곡물, 신이 내린 곡물로 알려져 있다. 조리가 쉽고 단백질·녹말·비타민·무기질이 풍부해 영양 면에서 우유에 버금가는 곡물로 인정받는다. 5000년 전 고대 잉카문명 시대 이전부터 식용 작물로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고원에서 재배돼 왔다.
카니와는 체노포디움 팔리디카울레를 말한다. 역시 오래 전부터 남미에서 식량으로 이용해 온 작물이다. 이 씨앗은 쉽게 요리할 수 있고 볶거나 가루를 내어 식재료로 사용한다. 밤 맛 비슷하며, 물이나 우유에 타 아침식사로 알맞다. 빵, 국수,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미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과에 속한 작물로서 시금치가 흔하다. 요즘은 경작지에서 흔히 잡초로 자라는 비름, 쇠비름 등도 식품으로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