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오래된 잠' 펴낸 이민화 시인

[저자와 함께]'오래된 잠' 펴낸 이민화 시인
"잃고 채우며 여기에… 다시 분홍이길"
  • 입력 : 2017. 11.09(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200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이민화 시인이 8년만에 '오래된 잠'이란 제목을 단 첫 시집을 냈다. 진선희기자

200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작업 갈등 딛고 첫 시집 발간

유년 상처와 마주하며 창작 재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한 번은 돌아가야 해/ 눈을 뜨고 있어도 자주 휘청거려/ 우물에 빠질 뻔한 꿈을 꾸었어/ 매일 반복되는 꿈이 진절머리가 나'('우물 속엔 금붕어가 산다' 중에서).

그는 '우물'이라는 유년의 어느 날과 마주하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릴 적 병치레가 잦아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 시절 겪은 아픔은 지금까지 시인을 붙잡는다. 우물 안에 사는 금붕어처럼 과거의 그는 오늘의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퇴고를 거듭하며 이 시가 완성되는 동안 그는 비로소 내팽겨쳤던 시와 동행할 수 있었다.

시집 '오래된 잠'을 낸 제주 이민화 시인. 200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을 표제로 단 첫 시집이다.

다층 동인에서 이 악물고 시 공부를 하며 당선의 기쁨을 안았지만 등단 이후 시 작업은 큰 부담이 됐다. 그는 4년전 쯤 시 쓰기를 그만둘까 했다. 그간 써놓은 시를 이동식 저장 장치(USB)에 보관해오다 그걸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40편쯤 되는 작품을 한꺼번에 공중에 날리고 보니 버틸 힘이 사라진 듯 했다. "시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고 한동안 시 쓰기를 접었다.

하지만 그의 곁을 맴도는 어린 날의 상처가 시로 말을 걸어왔다.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시어들을 끄적끄적 메모해 고치고 다듬다보니 하나둘 시편들이 더해졌다. 50편을 골라내 화요시 동인을 지도하는 정찬일 시인의 도움을 받으며 8년 만에 시집을 묶어냈다.

'누군가 자꾸만 나를 깨워. 나를 불러내. 반쯤 열어둔 창문으로 뛰어내렸어. 초경만큼이나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징징거리는 어머니의 잔소리.'('사춘기'중에서)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익숙한 모성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오래된 잠' 속 시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달리 시편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읽힌다. 사전을 열고 고향이라는 낱말의 페이지에서 잠든 후 깨어났을 때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나처럼'('고향을 베끼다')이었다. 시인은 반복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를 통해 자기 고백 같은 시의 양상을 뛰어넘고 싶은 게 아닐까. '나처럼 살지 마라'는 그 당부가 새로운 시를 향한 스스로의 다짐처럼 느껴진다.

"고민 끝에 시집을 내고 보니 한편으론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는 시인은 시집을 열며 이런 글을 적었다. "내게 세상은 봄이었고, 온통 분홍빛이었다. 분홍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잃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왔다. 다시 분홍이기를." 황금알. 1만5000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74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