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연출· 명연기로 빚어낸 30년전 그 해…영화 '1987'

진정성 있는 연출· 명연기로 빚어낸 30년전 그 해…영화 '1987'
  • 입력 : 2017. 12.14(목) 10:57
  • 연합뉴스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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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 현대사를 스크린에 옮기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것도 불과 30년 전,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사건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 '1987'은 한 대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1987년 한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6월 민주항쟁을 전면으로 다룬 한국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영화는 그러나 주저하거나 에둘러가지 않고, 담대하게 그 시절을 소환해낸다.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은 물론 각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고증을 통해 충실하게 구현한 대목에서는 감독의 진정성과 소명의식이 느껴질 정도다. '지구를 지켜라'(2003),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 등에서 개성 있는 영화 세계를 보여준 장준환 감독은 이번에도 뚝심 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장 감독은 13일 간담회에서 "비록 상업영화지만, 1987년에 용감하게 양심의 소리를 내고, 피땀 흘렸을 그분들을 생각하며 진심을 다해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허구와 유머를 적절히 안배하며 재미도 추구해 상업영화로서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게 영화적 장치도 마련했다.

영화 '198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숨진 장면에서 시작한다.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은 곧바로 시신을 화장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그러나 언론 보도로 사건이 알려지자,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기괴한 해명을 내놓는다. '대학생 쇼크사'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여러 사람의 용기로 세상에 알려지고,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다.

영화는 각 국면에 따라 중심인물을 내세워 이들의 활약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영화 '198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일 당직 검사로, 형사들이 내미는 화장동의서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며 부검을 밀어붙인 최검사(하정우), 대학생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윤기자(이희준), 사건의 진실이 담긴 비밀 서신을 옥중에 갇힌 민주화운동 인사로부터 받아 재야인사에게 몰래 전달하는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삼촌을 대신해 뜻하지 않게 연락책을 맡은 87학번 신입생 연희(김태리) 그리고 박종철 물고문 사건의 총대를 메고 수감되는 대공형사 조반장(박희순) 등이 그들이다. 교도관 한병용의 조카로 나오는 연희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존 인물을 토대로 했다.

영화 '198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모든 인물의 대척점에 선 악역은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이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박처장은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인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려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당시 재야 유력 인사들이 포함된 간첩단 사건을 기획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양심과 신념에 따라 선택한 행동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격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실화 자체가 지닌 힘이 큰 데다, 각 인물을 따라가며 교감하다 보면 감동과 눈물은 저절로 따라온다.

주·조연 할 것 없이 모두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너래, 애국자야. 고개 빳빳이 들고 살라우". 북한 사투리를 쓰면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준 김윤석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시종일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설경구, 문성근, 김의성, 여진구, 강동원 등 특별출연한 배우들조차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작은 배역이지만, 진심이 묻어난다.

영화 '198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는 6월 항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특히 작년 이맘때 촛불집회를 통해 '광장의 힘'을 경험한 관객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를 줄 듯하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1987:When the Day Comes(그 날이 오면)'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한열 합창단이 부른 '그날이 오면' 노래와 함께 6월 항쟁 다큐 영상도 함께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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