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대재난 속 그들, 벽신문에 진실을 담다

[책세상] 대재난 속 그들, 벽신문에 진실을 담다
日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의 '6일간의 벽신문'
  • 입력 : 2018. 03.2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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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 현장
손글씨 신문 만든 지역언론
"기자가 우릴 위해 움직인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3시40분, 그들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파괴되어 잔해더미로 변한 집들이 지붕채로 떠내려갔다. 사람이 타고 있는 차는 비명과도 같은 경적을 울리며 비상등을 켠 채 맥없이 휩쓸려갔다. 강한 여진과 눈 앞의 공포에 그들은 '어, 어'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히비(石卷日日) 신문사 오미 코이치 사장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던 날을 그렇게 기억했다.

1912년 창간한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도 대지진 피해를 입어 윤전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3월 12일자 신문을 찍어낼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재해를 입은 지역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자기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들이 생각해낸 건 벽신문이었다. "지금 전하지 않으면, 지역신문사 따위는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 행동을 이끌었다. 다행히 신문 용지는 젖지 않았다. 신문 용지를 잘라내 유성펜으로 '일본 최대급 지진·대형 쓰나미'에 얽힌 소식을 써내려갔다. 손글씨 벽신문은 5~6부 만들어져 신문사에서 가까운 대피소에 붙였다. 벽신문은 전기가 복구되기 전인 3월 12일부터 3월 17일까지 이어졌다.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가 펴낸 '6일간의 벽신문'은 유례없는 대재난 속에 '전달의 사명'을 다하려 했던 기자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기자들이 재해 현장의 최전선을 누비며 분투하는 모습은 언론의 사명을 새삼 일깨운다.

기자들은 벽신문 제작 과정에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우선하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이들에게 대피소가 어디있는지 알렸다. 식료품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엔 전국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았다. 허위정보가 넘쳐나며 의심이 깊어진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로 행동을 하자고 당부했다. "기자가 우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벽신문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를 줬다.

일본 지역신문사가 만든 6일간의 벽신문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즈음 벌어진 포항, 경주 지진 때문만은 아니다. 속보 뒤에 가려진 사실 확인 검증절차가 무기력하게 작동했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보도가 있었다. "시민의 믿음이 있어야 지역신문이 살아날 수 있다.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는 대재난의 위기에서 지역신문이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오롯이 보여주었다."(최낙진). 이상희 제주대 외국어교육원 일본어 강사, 최낙진 제주대 교수가 공동 번역했다. 패러다임북.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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