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찬미의 한라칼럼]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다음 선거를 기대하며

[고찬미의 한라칼럼]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다음 선거를 기대하며
  • 입력 : 2018. 06.12(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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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소중한 한 표를 더 얻기 위해 질주해 온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당락이 결정된다. 이 치열한 선거 공방을 지켜보면서 사실 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선거 풍토만 재확인 하게 됐다. 후보의 자격과 공약에 대한 검증은 정작 이루어지지 않고 오로지 당선만을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고 흠집 내기에 바쁜 선거판이었다. 이전투구의 장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은 예단할 수 없으나, 바라건대 부디 제주 도민을 진정 섬길 줄 아는 일꾼들이 당선됐으면 한다.

그래도 이번 제주 지방선거가 구태의연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여성 후보들의 등장과 그 약진이 남성기득권 위주의 제주 정치사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변화의 조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예부터 제주는 타 지역에 비해 사회 참여 여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독 정치 분야에서는 여성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변화를 보이며 차차 개선되고 발전해 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저번 지방선거에서는 최초로 선출직 여성 도의원들이 등장했으며, 이번에는 여성 최초의 도지사 후보를 포함하여 총 20% 넘는 여성 후보들이 경쟁하고 있으므로 더 많은 여성 당선인 배출을 기대하게 된다.

사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여성공천할당제가 있지만 유리천장이 여전한 이 사회에서 실제 운용상의 난점과 부작용 때문에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다. 사회 지도층으로의 진입은 여성들에게 아직도 높은 장벽으로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기는 선거가 보장된 것이 아님에도 제주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를 채우기 위해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여성 후보들이야말로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제주 미래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어려운 시도를 한 여성 후보자들에게 그 등장만으로도 힘찬 박수를 보내지만, 이 변화가 다음 선거에서는 혁신의 바람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욕심을 더 품게 된다. 실제로 이들의 선거 운동 방식 중 못내 아쉬웠던 점은 이 여성 후보들이 스스로에게 씌운 프레임이었다.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선거 운동과 유세 과정에서 빈번히 사용하며 무엇보다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유권자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어떤 후보는 '요망진' 여성이라고 자신을 홍보했는데, 이 제주말은 흔히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주로 어린아이나 여자들, 즉, 별로 기대 하지 않았던 대상이 위축되지 않고 무언가를 성취해나가는 모습을 대견하게 여길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심지어, 반어적으로 얌전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맹랑하게 굴 때 비꼬는 표현일 수도 있다. 이 말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공적인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은연 중 드러내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여성 후보들이 이러한 사회적 선입관을 타파하기보다는 그 틀 안에서 눈에 띄는 존재로만 자신을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여성 타이틀 외에 정작 다른 얘기들은 별로 하지 못한 채 말이다.

4년 뒤 다시 열리는 선거에서는 '여성 후보'라는 것이 더 이상 특이사항이 아닌 상식으로 자리 잡는 풍토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메르켈도 정치 입문 시 여성 최초의 독일 총리라는 사실이 강조됐지만, 4선 총리로 역임해오면서 그가 여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았다. 단지 그의 정치 역량과 업적들이 회자될 뿐이다. 우리의 다음 선거는 성별을 떠나서 후보 각자의 실력과 비전에 대한 열띤 품평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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