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59)]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19)몽골 알타이 교목한계선 위의 식생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59)] 제2부 알타이의 한라산-(19)몽골 알타이 교목한계선 위의 식생
하르하이라아산의 만년설…그 속의 다양한 식생들
  • 입력 : 2018. 06.18(월) 00:00
  •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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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몽골 알타이의 하르하이라아산 계곡. 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 송관필 김진 김찬수

시베리아낙엽송 숲속의 노랑투구꽃
한라산 영실계곡서 피는 흰진범과 흡사
계곡 들어서자 만년설 녹아 흐르는 물
하르하이라아산의 유명세 이유 알게돼


김찬수 박사

숲을 벗어나 탁 트인 골짜기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탐사대는 지금 하르하이라아산 동사면의 계곡을 따라 서북쪽방향으로 오르는 중이다. 시베리아낙엽송 숲속이나 숲 주변에는 한라산에 나는 종들과 같거나 근연인 식물들이 많다.

숲 가장자리에서 노랑투구꽃(아코니툼 바르바툼, Aconitum barbatum)이 우리를 반긴다. 언 듯 보면 마치 한라산 영실계곡에 피는 흰진범과 흡사하다. 같은 종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한반도에는 강원도 이북 백두대간을 따라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고산준령에 분포한다. 국경을 넘어 북쪽으로는 중국 길림성, 내몽골, 산시성 등 서북지방,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에 걸쳐 분포한다. 그러므로 이곳은 노랑투구꽃의 최서단인 것이다. 한라산에는 전국에 공통으로 분포하는 흰진범을 비롯해서 한라산 특산식물인 한라투구꽃이 자라고 있다. 투구꽃 종류들은 우리나라에 19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중부 이북에 분포하여 전체적으로 추운지방에 자라는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골을 비롯해서 중국의 동북지방, 러시아의 시베리아 등에서 다양한 종들을 만날 수 있다.

몽골 알타이 교목한계선 상부를 탐사 중인 서연옥대원.

인접한 곳에서 참시호(부플레우룸 스코르조네리폴 리움, Bupleurum scorzonerifolium)도 만났다.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에 자란다. 그 외로는 백두산의 고산대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다. 한라산의 참시호는 식생의 변화 때문인지 보기 힘들어졌다. 이곳의 참시호는 전체적으로 건전하게 잘 자랐고 개화 상태도 아주 좋다. 한국을 제외하면 몽골, 일본, 중국, 러시아의 시베리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알타이는 역시 이 종의 분포 최서단으로 판단된다. 참시호는 한약재로 이용하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널리 재배하고 있기도 하다.

계곡으로 들어섰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동향에서 북향에 이르는 사면 중 완만한 곳에는 시베리아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대략 15~20m, 굵기는 20~40cm 정도다. 이런 숲의 모습을 보면 이곳에도 강수량이 적은데다 남~서향 사면은 증발량이 너무 많아 큰 나무들은 자랄 수 없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계곡은 사람보다 훨씬 큰 바윗덩이들을 비롯해서 조약돌과 모래도 많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물기라고는 한 방울도 아쉬워 할 만큼 그렇게 건조한 곳임에도 계곡물이 콸콸 소리 내며 흐르는 것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노랑투구꽃.

참시호.

이 물은 높은 곳에 쌓여 있는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것이다. 이 산을 유명하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바로 이 계곡물이다. 오늘의 탐사 목표는 이 계곡물이 시작되는 곳, 즉 만년설까지 가는 것이다. 대원 중 누구든 그 만년설에 발자국을 찍어 사진으로 기록하자고 다짐하면서 무거운 장비들을 짊어지고 길을 재촉하고 있다.

물가에서 50cm 정도 높이로 자란 한 무더기의 노란 꽃 덤불을 만났다. 양지꽃의 일종이다. 남한에는 이런 관목성의 양지꽃이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이런 꽃을 만나면 아주 신기 해 한다. 하지만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어디를 가도 북위 40도 정도의 고위도를 통과하여 북으로 진행하면 이런 관목성의 양지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꽃은 물싸리(포텐틸라 프루티코사, Potentilla fruticosa)라고 하는 양지꽃이 일종이다. 한반도에서 이 꽃을 보려면 백두산을 비롯해 개마고원 같은 북부지방의 고산을 찾아가야할 것이다. 현재 남한에서는 볼 수 없다 해도 세계적으로 보면 분포구역이 대단히 넓고, 자생지도 해발 4000 m까지의 물가, 초원, 습지, 돌무더기 같은 다양한 곳으로 생태적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도 빙하기에 널리 분포했다가 최근 온난화의 영향으로 멸종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싸리.

연옥꿩의비름.

어느 순간 물소리가 뚝 끊기면서 조용해짐을 느꼈다. 정상 쪽으로 약 400m을 걸었을까. 계곡 바닥은 반사하는 햇빛으로 반짝이는 조약돌이 드문드문 보인다. 바위틈으로는 풀이 무성하다. 콸콸 흐르던 물은 다 어디로 갔지?

한라산의 고지대, 구상나무 숲이 나타나거나 관목림, 초원이 나타나는 해발 1400m 이상에서 경험하는 어느 얕은 계곡 같은 분위기다. 주위에 샘이 보였다. 상당히 많은 물이 솟아나오는 샘이다. 영락없는 백록샘이다. 주위 식생의 높이나 피어 있는 꽃들의 모습이나 아주 유사했다. 우리는 이 샘을 백록샘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래 좀 쉬어간들 어떠리!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갔다. 우와~ 이 시원함!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일까? 흰 눈이 언뜻언뜻 보였다간 사라진다. 갈 길이 멀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우리는 이미 해발 1950m, 한라산 정상의 높이를 통과하고 있다. 시베리아낙엽송들은 작아질 대로 작아지더니 이젠 아예 자취를 감췄다. 교목한계선을 돌파한 것이다.

풀꽃 사이로 노출 된 작은 바위, 그 작은 바위에도 여러 식물들이 살고 있다. 빛나는 한포기 다육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둠 이웨르시(Sedum ewersii)라는 종이다. 해발 3500m까지 높은 산에 사는 식물이다. 키는 25cm 이내, 직경 1~2cm 정도의 둥근 잎이 마주난다. 지상부는 연약한 풀이지만 지하부는 단단한 목질이다. 직경 2~3 cm의 우산모양 꽃차례에 피는 홍자색의 꽃이 아름답다. 우리말 이름은 '연옥꿩의비름'으로 하였다. 이 식물을 한국인으로선 처음 채집했으며, 본 알타이식물탐사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과학자로서는 아마 가장 멀고 높은 곳을 조사한 서연옥박사를 기억하고자 이렇게 이름 지었다. 연옥꿩의비름은 아프가니스탄, 인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파키스탄, 러시아의 시베리아, 타지키스탄, 그리고 이곳 몽골의 알타이에 분포한다. 그러므로 이곳 알타이는 연옥꿩의비름의 분포 상 동한계라고 할 수 있다.

글=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서연옥 송관필 김진 김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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