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사상 첫 천지 등정
'한라에서 백두까지' 현실로제주도 남북교류사업 기대감
남과 북의 정상이 사상 처음 백두산에 올랐다.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오른 후 천지까지 함께 동행했다. 남북 최고지도자가 백두산 천지를 동반 산책한 것은 4·27 회담 때 도보다리 대화 이상의 감동적 장면이다.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상징하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선명하게 보여준 순간이다. 제주도가 수립한 한라-백두 교차관광 추진 등 남북교류사업에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청와대도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한라산 방문 계획에 대해 "매우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북한 백두산에서 안내원이 보여주는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캠핑을 즐긴 것은 또 다른 변화의 신호다. 북한의 속살을 개방하기를 희망한 뉴질랜드의 등반가 로저 셰퍼드가 지난 8월18일 외국인들을 이끌고 백두산에서 캠핑과 트레킹을 한 것은 주목된다.
북파에서 바라본 북한쪽 천지 내부. 천지까지 연결된 계단과 인공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크게 북파, 서파, 남파, 동파 등 모두 네 갈래다. 이 가운데 북·서·남파는 중국 영토이고, 동파는 북한 땅이다. 이번 백두산 탐사는 지난 달 27, 28일 서파(서백두)와 북파(북백두)를 통해 이뤄졌다.
중국은 백두산 관할권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2005년 설립한 길림성 정부 직속의 '장백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로 이관했다. 장백산보호구의 통합 보호관리 강도를 높이고 관광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진다. 위원회는 길림성 '시' 단위의 위상을 갖는다.
중국에서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는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다. 이 곳에서 서파와 북파로 향한다. '파'는 언덕이란 뜻이다.
장백폭포와 소천지가 있는 북백두와 달리 서백두가 관광객에게 개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탐사단이 이곳을 찾았던 2000년 이맘 때 만하더라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당시 새벽 4시 서백두 정상에 올라 장엄한 일출의 황홀경을 맛보았다. 탐사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북한과 중국을 가르는 37호 경계비, 그 너머가 북녘이다. 서파 청석봉과 와호봉 사이에 있다.
그 사이 서파 코스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트레킹 코스가 열리고 정상부 이르는 등정로는 계단이 놓였다. 서파 주차장은 해발 900m 지점에 있는 서백두 주차장과 매표소를 통과해 셔틀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 서백두 정문에서 버스로 백두산 주봉 정차장까지는 약 40분 거리. 여기에서 30분쯤 1442계단을 걸어 오르면 천지를 볼 수 있다. 등정로와 천지 주변은 인파로 가득하다. 가마를 타고 오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등정로에는 폭설이나 비바람에 피할 수 있도록 가림막 시설도 해놓았다.
서파 청석봉과 와호봉 사이에 있던 5호 경계비는 37호로 바뀌었다. 북한과 중국이 국경공동조사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2009년에 경계비를 갱신하고 번호도 바꾼 것이다. 37호 경계비에서 반대편 자하봉과 쌍무지개봉 사이에 있는 38호 경계비를 직선으로 이으면 천지를 가르는 북중 국경선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37호 경계비 주변엔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37호 경계비 너머 북한 지역까지 왔다갔다 하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사이 37호 경계비를 경계로 목책을 설치해놓아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탐사단이 찾은 천지는 감청 빛과 하늘 빛, 구름이 내려앉은 하얀 빛이 한데 어우러진 거울과 같았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의 바다라고나 할까. 천지는 호수변에 떨어지는 빗물과 주변 사면 능선을 통해 흘러드는 유수, 그리고 호수 밑에서 솟아나는 지하수가 수원으로 알려져 있다. 서백두는 들꽃 탐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험준한 산세의 북백두와 달리 완만한 구릉 형태로 천지까지 이어진 고원지대 곳곳이 들꽃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천상화원인 고산화원이다.
서백두의 또다른 탐방 포인트는 신비의 연못 '왕지'와 금강대협곡이다. 왕지는 서백두 셔틀버스 운행구간 중간쯤에 내려 약 5㎞를 걸어가야 확인할 수 있다. 왕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제주의 산정호수인 물장올을 떠올리게 한다. V자 형태의 금강대협곡은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별취재팀
남북 화해무드 속 백두산 화산분화 공동연구 시급
[전문가 리포트]
제주에선 속돌이라 부르는 부석층 정상부에 쌓여 있어천지, 분출 초기 오름 분화구처럼 작다가 이후에 점차 커져
백두산은 언제 폭발할 것인가? 이런 기사가 간간이 뉴스를 탄다. 2015년 전후에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지질학자의 주장에 따라 백두산 아랫마을 이도백하에서는 건설 중에 있던 호텔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다. 그러나 백두산은 폭발하지 않았다. 지금도 백두산 천지는 고요하기만 하다. 개인적 의견으론 화산 폭발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얀 부석층으로 덮여있는 백두산 정상부,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지를 보기위해 오르는 모습을 볼수 있다. 특별취재팀
백두산 대폭발을 예견하는 학자들 주장은 대개 지금부터 1072년 전인 서기 946년에 있었던 엄청난 규모의 폭발과 그에 따른 지구적인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당시 화산재는 일본 북해도 남부와 아오모리 현의 논둑에 5㎝ 두께로 퇴적되어 있다. 백두산 주변 반경 수십㎞에는 당시 뜨거운 화산재에 불탄 침엽수림 나무가 숯으로 변한 채 발견된다. 이 정도의 화산재를 방출하는 화산 분화로부터 백두산이 다시 화산활동을 재개할 경우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당시 화산의 규모는 상당했다.
실제로 946년 천지가 만들어진 후에도 화산활동은 계속되었다. 서기 1012년, 1373년, 1401∼1406년, 1597년, 1668∼1673년, 1702년, 1903년에 화산활동 기록이 있다. 이중에서 1012년과 1401∼1406년의 분화는 규모가 컸다고 한다. 역사시대 이후에 백두산 천지는 살아 움직이는 활화산으로 계속하여 분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규모가 큰 분화와 작은 분화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굳이 가장 규모가 큰 분화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화산의 규모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작은 규모의 화산일지도 모른다. 최근 1991년에는 천지 화구내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는 아주 작은 규모의 활동이 관측된 적도 있다.
백두산은 활화산이기 때문에 언제 폭발해도 문제가 없다. 다만 그 시기와 규모를 예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과학적 연구자료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정치적으로 이슈화될 수 있는 대재앙을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정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백두산을 2000년 여름에 처음 탐사한 이래 3, 4년에 한 번씩 다섯 번 백두산 천지에 다녀왔다. 모두 중국을 통해서였다.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조선족 마을에 머물고 동포 안내원들과 교류하며 백두산 천지는 물론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돌아다니는 여정이었다. 연길시를 비롯하여 장춘, 심양, 용정에서 독립투사의 후손들이 사는 모습을 보았다. 드넓은 만주와 간도 땅에서, 백두산 천지에서 민족혼을 느꼈다. 그러나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이곳이 남의 나라, 중국 땅임을 수시로 일깨워 준다. 사진을 찍거나 암석 자료를 채취하려고 할 때, 동행한 가이드는 대부분 "안됩니다"라며 제지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현수막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칠 수도 없다. 단지 조용히 구경하고 기념사진 찍는 것만 허용된다. 그야말로 관광지인 것이다. 그것도 중국, 남의 나라의 유명 관광지를 다녀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운 연구조사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북한간의 화해 무드를 타고 백두산 화산분화에 대하여 북한과의 공동 연구를 시급히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지 분화구 내부의 작은 분화구. 화산활동 흔적이다.
백두산 정상의 화구인 천지를 특별히 칼데라(caldera)라고 한다. 칼데라는 조면암이나 유문암질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의 분화구가 함몰되어 넓은 분화구의 형태를 보이며 물이 담겨 있어 화구호를 이루기도 한다. 화산 폭발 당시 분화구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름과 같이 작았으나 분화구 속의 용암이 빠져나가 비어 있으므로 화구 중심으로 무너져 내리며 화구가 커지게 된다. 마그마가 빠져나간 공간이 무너지며 분화구가 커지는 것이다. '함몰 칼데라'라고 한다. 일본 큐슈의 직경 20㎞나 되는 넓은 분화구의 아소산도 함몰 칼데라이다.
천지 칼데라는 우리 민족의 성지로서 말 그대로 '하늘 연못'이다. 천지 호수의 규모는 남북 4.4㎞, 동서 3.37㎞이고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약 20억 톤의 담수를 담고 있다. 2000년 방문시에 천지 호숫가로 내려가 물속에 손을 담가봤다. 물은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매우 찼다. 분화구 내부의 지하수가 수원이다. 화구 북측의 달문을 통하여 장백폭포로 떨어지며 송화강의 원류가 된다.
백두산 정상의 천지 주변에는 백운봉, 청석봉 등 16개의 봉우리가 있다.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에 속하는 장군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해발 2750m이다. 봉우리 사이에는 수백m 두께의 하얀 부석(浮石)층이 쌓여 있다. 물에 뜨는 가벼운 돌이다. 부석(pumice)은 조면암질 화산활동의 부산물로서 제주에서는 '속돌'이라고 부른다. 산방산과 같은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다. 제주에서 흔한 오름과 같은 현무암질 화산활동에서는 붉은색의 스코리아(scoria)가 방출된다. 제주에서는 '송이'라고 부른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백두산 정상부의 하얀 부석층은 멀리에서 보면 머리가 하얀 산이다. 백두산의 어원인 셈이다. 여름철 2, 3 개월만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 여름 한철 외에는 일 년 내내 만년설로 눈에 덮여 있어 온통 하얀 눈세상이 된다. 지금쯤 9월에 천지에는 첫눈이 내린다고 한다. "추석 전에는 반드시 눈이 옵니다"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전부터 장백산(창바이산)이라고 부른다. 일 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다거나, 하얀 부석으로 인해 머리가 하얗거나 피차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탐사를 하면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민족의 슬픔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역사적으로 드넓은 만주와 간도는 아직도 독립투사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조선족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남의 나라 중국의 영토라는 사실이다. 마음껏 소리치지 못하고 자유롭게 조사할 수 없다. 줄곧 중국을 통하여 백두산 천지에 오르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조사했다. 남북 두 정상이 사상 처음 백두산 천지에 오른 것처럼 '한라에서 백두까지'는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다음 조사는 남의 나라 중국이 아니라 북한을 통해서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