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독일 과학사가의 '밤'을 위한 예찬론

[책세상] 독일 과학사가의 '밤'을 위한 예찬론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밤을 가로질러'
  • 입력 : 2018. 09.28(금)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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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정·문학적 인문도서
밤·꿈·욕망 등 굵직한 주제
도덕이 지닌 이중성도 다뤄

"사람들은 어둠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밤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며 그런 다음에 밤을 통과해야 한다. 한편으로 밤에 익숙해지고 밤의 실종을 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밤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독일의 과학사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밤을 가로질러'의 본문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밤'으로 안내하는, 과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인문 교양도서다. '밤'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저 먼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도시에 나타난 '밤의 종말'까지 다룬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의 여파로 야경꾼이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으며, 지상의 밤이 환해지면서 밤 문화가 나타났다고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언급된다.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밤은 낮이 존재하기 위한 장치다. 저자는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의 주제를 통해 밤의 이미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질문들을 하나씩 짚어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지를 유려한 문체로 보여준다.

저자는 과학, 문학, 역사에 새겨진 밤의 흔적, 밤의 욕망, 밤의 아름다움, 밤의 위대함에 대한 궤적을 제시하며 "모든 통찰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다"고 단언한다. 삶의 어두운 면을 우아하면서도 격조 높은 문체로 그려낸다. 또한 저자는 문학 속의 잠, 수면학의 역사, 뇌와 수면과의 관계, 생체시계의 비밀, 밤 호르몬,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 동물들의 잠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의 꿈 이야기, 꿈의 문화사, 정신분석학의 역사를 우아한 발걸음으로 산책한다.

저자는 '악'을 주제로 다루며 인간의 도덕이 지닌 이중성을 논한다. 친구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하게 구는 도덕의 이중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도덕의 진정한 원천은 '지각'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밤이라는 시간의 위대함을 표현하며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말로 책을 매듭짓는다. 해나무.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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