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또 다른 생명 피워내는 여성농민의 삶

[책세상] 또 다른 생명 피워내는 여성농민의 삶
김신효정의 '씨앗, 할머니의 비밀'
  • 입력 : 2019. 01.11(금)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아홉 할머니의 비밀 이야기
토종씨앗의 끈질긴 생명력
제주·강원 향토음식도 소개

할머니라는 단어는 참 푸근하다. 어머니보다 더 인자하고 너그러운 모습이다. 항상 사랑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내고, 당신이 아끼는 무엇 하나까지도 모두 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할머니는 정겨운 고향 같고 자신의 부모와의 혈연이라는 끈끈한 관계선상에 존재하는, 언제나 기대고 싶은 고마운 분이다.

'먹방'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크다. 특히 현대인들의 인스턴트나 육류 위주의 식생활에 있어 성인병 유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옛 것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김신효정이 우리나라의 토종씨앗과 그 씨앗으로 차린 밥상을 지켜 온 아홉 할머니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씨앗, 할머니의 비밀'에 담았다. 이 책은 '2018 우수출판콘텐트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옛 것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많은 깨달음을 전한다.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토종씨앗, 할머니의 지식과 경험은 돈이 되지 않는 낡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사라지기 전의 할머니의 비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이들 할머니의 평균 나이는 79세.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1세라는 점에서 저자는 다급해졌다고 했다.

저자와 할머니의 주름진 삶을 앵글에 담아낸 문준희 작가는 씨앗에 담긴 할머니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난 3년간 제주를 포함해 강원도와 남도 등 전국을 직접 발로 찾아 나섰다. 할머니들이 지켜온 씨앗과 밥상, 그리고 억척같은 삶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했다. 제주의 '푸른독새기콩장 먹고 갑서양'에서 제주시 한림 김춘자·고란숙씨의 이야기가 정겹다.

숨이 멎을 때까지 손에 쥐어진 씨앗과 호미. 그러나 할머니들이 수십년간 쌓아온 농사의 기술과 씨앗의 지혜, 밥상의 노하우는 언제나 베일에 가려졌다. 저자는 얼마 없어 역사가 될 할머니들의 삶으로부터 미래를 찾기 위한 작업을 수행했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토종씨앗이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딸에게로 전해지는 그 오랜 시간에서 독자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읽게 된다. 그리고 그 토종씨앗 안에는 고된 우리나라의 역사와 각 집안의 내력, 그 속에 희로애락이 모두 응축됨을 인지한다.

이 책은 돈으로만 환산되는 세상 속에서 비밀에 부쳐져 온 여성의 지식과 노동, 삶의 지혜들을 발견해 가는 여정을 담았다. 여성농민이 견뎌 온 일상의 고단함과 지독한 통증이 아로새겨져 있다. 저자는 그 고마운 마음을 "할머니가 기울여 준 마음 덕에 오늘도 할머니의 손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난다"라고 적고 있다. 소나무. 1만5000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51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