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의 한라칼럼] 386세대의 기억

[이재근의 한라칼럼] 386세대의 기억
  • 입력 : 2019. 09.17(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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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86세대다. 요즘은 586세대로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80년대 초 대학을 다녔다는 점은 변화가 없다. 대신 이 용어에는 예전과 달리 언론과 일반인들의 평가에서 달라진 점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주장하고 사회개혁에 앞장섰던 세대에서 어느덧 권력의 주류층을 형성하고 이들로 인해 그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는 걱정을 듣기도 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거나 경제적으로 기득권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념적으로 좌편향인 강남좌파라는 묘한 불균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개혁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존재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은 어떻고.

80년대 20대를 보내면서 내가 배운 것은 사회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따른 실천 방법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사회 현상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스펙트럼을 제시한다거나 무엇이 사회발전을 저해하는지, 어떤 점이 우리 사회의 반봉건성과 후진성을 보여주는지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고 군부 쿠테타를 통해 정권이 유지됐다. 삼저호황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던 1986년에도 대한민국의 GDP는 인도 중국 등에 뒤처져 있었으며 일본의 18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1인당 GNP 역시 1977년에 1000달러를 넘은 이후 86년에는 4000달러를 넘는 지속적이고 가파른 성장을 이뤘지만 일본의 2만2000달러에 비해서는 턱 없이 적은 규모였다.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데 부의 편중과 사회적 불합리가 곳곳에서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사회 시스템과 기득권층에 비판적이고 불신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586이라고 불리는 시대가 됐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20대 때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치매가 생기면 최근의 경험들은 잊혀져도 어릴 적 기억들은 오래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월에 장사 없듯이 몸이 고장 나는 나이가 됐다. 정기 검사를 위해 명절 전 종합병원을 찾았다. MRI와 CT촬영을 위해 이틀의 시간을 냈다. 병원을 올 때마다 느끼지만 시스템이 너무 잘 갖춰졌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비용 역시 병원비의 5%도 안되는 비용을 내고 나니 이런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가 달라졌구나 그리고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의료 시스템을 긍정하게 된다. 내 머리 속의 의료 시스템은 80년대 기억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말이다.

매번 사회를 비판하고 판단할 때 이미 30년 된 기준에서 우리 사회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렀는데도 기준이 바뀌지 않은 탓이리라.

일본이 우리를 향해 경제제재를 가하는 일이 예전의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경제 강자가 경제 약자를 괴롭히는 압력이지만 뒤집어보면 일본에게 위협이 되는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아시아 국가 중 GNP순위는 이제 일본 다음 한국이다. 머지않아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다.

새로운 미래를 가져가려 한다면 기준을 오늘의 시점으로 리셋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 역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혹시 내가 586세대가 됐는데 아직도 386세대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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