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5)부산감천문화마을

[과잉관광 대안을 찾아서] (5)부산감천문화마을
관광수익 마을 환원으로 관광객·주민 상생방안 찾는다
  • 입력 : 2019. 10.31(목)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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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사업 후 쇠락 마을서 세계 명소 52곳에 포함
사생활 침해 막으려 에티켓 강조… 땅값 상승은 문제
주민들 스스로 마을사업장 11개 운영… 수익 마을 환원

부산광역시 사하구 산자락에 위치한 부산감천문화마을.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모여 살던 산동네였던 이 마을은 이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됐다.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형형색색의 집들과 모든 길이 통하는 골목길은 도시재생사업을 거치며 감천만의 독특한 경관으로 재탄생 해 해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부산감천문화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쇠락한 마을에서 부산 대표 관광지로=10월 22일 오전 11시. 부산감천문화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5분 정도 걷다보니 저 멀리서 길다란 인간 띠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이곳은 나인주 작가의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작품이 설치된 곳이다.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약 1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관광객들은 그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자기 순서가 돌아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지만 관광객들에겐 큰 불편이 아닌듯 했다.

관광객이 부산감천문화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상민기자

부산감천문화마을은 1980~1990년대 무렵부터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텅 빈 부산감천문화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지난 2009년부터다.

부산시와 마을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사람이 떠난 빈집을 마을공방, 예술창작공간, 카페 등으로 탈바꿈했다. 또 마을 미술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마을 곳곳에 벽화와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낡은 집에는 형형색색의 색을 입혔다.

여러 도시재생사업을 시도한 끝에 현재 부산감천문화마을은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부산의 대표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입소문을 타자 관광객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2011년 2만5000명이던 부산감천문화마을 방문객은 지난해 250만명으로 7년 만에 100배 가량 급증했다.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은 60%를 차지한다. 지난 2017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곳 중 하나로 꼽혔다.

부산감천문화마을은 투어가 가능한 골목길은 황토색 규사로 포장해 그렇지 않은 길과 경계를 구분하고 있다.

▶관광객과 함께 사는 마을=부산감천문화마을은 서울북촌한옥마을처럼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마을 전체가 관광지가 된 경우이다. 부산감천문화마을에는 현재 3700세대(6500명)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관광객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소음, 사생활 침범, 쓰레기 투기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아침 일찍부터 몰려드는 관광객 탓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호소가 잇따랐다.

감천문화마을에 거주한 지 60년이 넘었다는 이완수(80)씨는 "마을버스마다 관광객들로 만원이어서 버스 타기조차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면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갑자기 집에 불쑥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사를 갈까 고민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옷 수선집을 하는 장세옥(71·여)씨는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나아진 편이라고 했다. 장씨는 "과거에는 관광객들이 지붕에 올라가고 옥상에 걸린 속옷 등을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마을에 관광객이 지켜야 할 예절을 안내하는 스티커를 곳곳에 붙이고 난 뒤부터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현재 감천문화마을 입구에는 방문객이 지켜야 할 10가지 에티켓을 적은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계단식 구조 탓에 지면보다 낮게 형성된 지붕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주민 생활공간에 들어가지 말 것' '금연' '쓰레기 투기 금지'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도 마을 곳곳에 붙여져 있다.

관광객이 지켜야 할 에티켓을 적은 알림판.

또 감천문화마을 측은 주민 불만이 적은 기존 투어 길 외에는 가급적 관광객이 다니지 못하게 도로 색깔을 달리해 경계도 구분했다. 황토색 규사로 포장된 길은 투어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길에서는 투어를 자제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 소음을 줄이기 위해 마을 내 상점 운영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제한했다.

장씨는 이 같은 조치들이 시행되며 관광객에 의한 사생활 침해가 감소한 것은 다행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주로 주민을 상대하던 기존 골목상권이 관광객 급증 후 치솟은 임대료 때문에 마을을 떠나는 일은 여전히 문제라고 토로했다.

장씨는 "이 마을엔 그 흔한 야채가게도 없다"면서 "야채를 사려면 마을과 멀리 떨어진 시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에 따르면 10여년 사이 3.3㎡당 100만원이던 땅값은 현재 1000만원 정도로 10배 가량 올랐다.

그러나 장씨는 그렇다고 관광객 수를 인위적으로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장씨는 "인구가 줄어든 마당에 관광객까지 감소하면 마을의 활력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면서 "관광객이 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힘을 모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억지로 관광객을 줄이면 안된다"고 말했다.

▶관광 수익 주민에게 돌려주다=감천문화마을에는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협의체가 있다. 2009년 부산감천문화마을 도시재생사업 시작과 동시에 발족한 주민협의체는 부산시 사하구와 함께 마을 미술프로젝트를 주도했다. 2011년에는 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해 지금까지 마을에서 발생한 세세한 현안들을 손수 챙기고 있다.

주민협의체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관광 수익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관광객에 의해 발생한 주민 피해 등 마을 내 갈등은 주민 환원 사업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관광객과 주민 사이의 갈등은 마을 주민들이 관광 수익에서 소외될 때 주로 발생하다는 것이다.

관광 수익도 직접 창출하고 있다. 주민협의체는 공방, 음식점 등 11개 마을 사업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고용도 창출했다. 주민협의체는 마을 사업장에 일할 사장과 종업원을 모두 지역 주민들로 채용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골고루 채용 기회를 주기 위해 2년마다 한 번씩 공개 채용을 한다.

감천문화마을 전순선 주민협의회장은 "마을 사업장에서 번 수익 중 주민협의체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 한 푼도 없다"면서 "마을 사업장 사장도 월급만 받는 월급 사장이다"라고 말했다. 또 전 회장은 "부산시와 협의를 거쳐 마을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이 입점할 수 없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마을이 관광지화 되면서 발생한 수익을 마을이 차지해야지 대기업이 손쉽게 가져가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주민협의체는 마을 사업장에서 번 수익금으로 주민 6500여명에게 마을 먹거리 상품, 종량제 봉투 등을 제공했다. 또 그동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랫마을까지 내려가 목욕을 했던 마을 노인을 위해서 '감내작은목간'이라는 목욕탕을 설립했다. 관광객들로 마을버스가 매번 꽉 차는 문제를 해결하려 주말에 주민만을 대상으로 한 무료 행복버스도 운행했다. 무료 마을 빨래방, 주거환경 개선 사업도 전부 마을 사업장에서 번 수익금으로 하는 대표적인 주민 환원사업이다.

전 회장은 조만간 마을 채소가게를 꾸릴 예정이라고 했다. 부지도 물색해뒀다. "야채가게가 없어 야채를 사려면 마을과 멀리 떨어진 시장에 가야 한다"는 주민들의 불만을 정확히 알아챈 것이다.

전 회장은 "주민들 불편은 주민들이 가장 잘 안다"면서 "행정은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지, 마을 문제를 모두 행정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감천문화마을은 현재 구축한 관광 마을이라는 브랜드를 잘 가꿔나가면서 관광객과 주민이 상생하는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그럴려면 우선 주민들이 직접 마을 관리에 뛰어들고 또 서로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는 등 마을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민·김현석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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