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0년만에 “봄이 왔다”고 외친 4·3 수형인

[사설] 70년만에 “봄이 왔다”고 외친 4·3 수형인
  • 입력 : 2020. 12.09(수) 00:00
  • 편집부 기자 hl@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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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로 접어든 쌀쌀한 날씨에 “봄이 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유채꽃이 피었다”고 반겼습니다. 여느 청년의 외침이 아니라 아흔을 넘긴 이가 그랬습니다.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이 전한 감격의 메시지입니다. 4·3 수형인이 7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진정한 봄’이 왔음을 이렇게 알린 겁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7일 재심 선고 공판에서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를 뒤집어 쓰고 옥살이를 한 김두황(9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과거 4·3 수형인에게 공소 기각 판결이 내려진 적은 있지만 김씨처럼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재판부는 “해방 직후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옥살이를 했다”며 김씨를 위로했습니다. 김씨는 4·3 당시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사흘 뒤에는 무장대에게 좁쌀 1되를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후 김씨는 목포형무소로 이송돼 옥살이를 했습니다.

4·3 피해자 중에서도, 특히 4·3 수형인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단순히 '억울한 옥살이'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따가운 질시와 냉대로 인해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데다 '빨갱이'라는 오명까지 따라다녔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자식들은 '연좌제'로 취직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피해가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이 됐던 것입니다. 김씨처럼 4·3 광풍에 휘말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이 253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서 이들의 억울함을 하루빨리 풀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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