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죽음을 기억하라

[신윤경의 건강&생활] 죽음을 기억하라
  • 입력 : 2021. 02.17(수)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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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감염의 공포뿐 아니라 전파자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더욱 위축시킨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그런데 이는 인간 스스로 자초한 위기이다. 이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겨울엔 유독 부고가 많다. 나무가 메마르고 땅이 얼 듯 생명의 기운이 기울기 때문이다. 올 겨울은 팬데믹에 이상기후까지 겹치며 슬픈 이별 소식이 더욱 많았다. 필자도 가장 사랑하던 이를 갑작스레 잃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산책하고 친구와 통화하고 가족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다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돌아오지 못했다. 필자는 119를 부르며 그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멈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고 의식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뇌의 작동이 멈추었음에도 멎었던 심장이 약물의 힘으로 힘겹게 뛰다가 며칠 후 완전히 멈췄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낯설고 불편한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다. 예상치 못했다가 불쑥 접해서이기도 하겠고, 우리가 삶은 좋은 것, 죽음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문화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건강하고 젊게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방법들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질병보험, 상조회사 가입으로 상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많은 이가 가족의 죽음조차 그 과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 죽을 운명임에도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다. 작금의 팬데믹과 인류멸종을 예언하는 기후위기는 인간이 죽음을 삶과 분리하고 외면하면서 시작됐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존재는 자연스럽게 이타적이 되므로 타자를 착취·소비하지 않고 돌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은 삶을 강렬하게 일깨운다. 가슴 찢어지게 그립고 미안하고 고맙고 죽을 만큼 괴로운 상실의 경험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방금 전까지 나와 웃고 밥 먹고 이야기 나누던 존재가 어느 순간 그저 물질덩어리가 되는 과정을 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육신에 깃들어 있던 그 의식 혹은 영혼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지인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데리고 납골당을 다녀오며 아들과 필자 가족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고 한다. 평소 자주 함께 산책하고 밥 먹던 사이였으므로 지인의 아들은 슬퍼하며 처음으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죽음을 터부시하며 숨기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교육인가.

사랑하는 이의 돌아감을 경험한 이들은 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손톱보다 작은 씨앗이 땅에 심어져 나무로 자라는 과정과 현미경으로 관찰할 크기의 수정란이 인간이 되는 과정의 신비를 보라. 그리고 그것들의 죽음도 보라. 생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 가족의 장례식장에는 교제하던 대안학교 학생들과 신부님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그와의 추억을 웃고 울며 나누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떠들썩했다. 한결같이 그에 대해 이른 나이이기에 돌아가 안타깝지만 참사람이었다고, 잘 산 인생이었다고 했다.

지속되는 팬데믹과 기후위기 그리고 죽음이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 잘 살고 있습니까?'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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