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우리는 얼마나 모질게 살아왔던가. 16세기 말 임진왜란 이래 수 백년에 걸친 조선의 파탄은 결국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식민화로 이어졌다. 세계대전의 종전에 다른 해방은 독립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분단으로 머물렀고, 그로 인해 남과 북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참으로 모질고 모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분단체제의 불안정을 딛고 어렵사리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궜다. 고난의 20세기를 넘어 영광의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인은 이제 좀 살만한 상황에서도 반신반의하면서 스스로 묻곤 한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한없이 높은 문화이 힘이다'라고 했던 백범 김구 선생은 꿈은 과연 어느 정도나 이뤄졌는가?
이러한 질문은 정체성 논의를 유발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정체성을 가진 나라이길래 저토록 모진 세월을 견뎌오면서 이토록 억척스럽게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인가? 무릇 정체성이라 함은 생각하는 나의 또렷한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서구식 근대적 자아정체성의 출발이다. 그러나 이렇듯 생각하는 나로부터 출발한 정체성에는 의문과 역설이 한가득이다.
과연 나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가? 과연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에 대해 남이 생각하거나 말하는 바대로 정체성을 규정당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탈근대 철학은 정체성의 역규정으로 대답한다. 내가 아닌 남의 눈으로 본 바가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남을 바라보듯이 남도 나를 본다. 나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내가 보는 내가 아니라 남이 보는 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한국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20세기 동안 모진 고난 속에서 경제와 정치 분야의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후, 그것이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는 문화적 성취가 얼마나 아름답게 꽃피고 있는지를. 한류가 영화와 대중음악, 드라마, 음식 등의 문화 영역으로 확산하면서 어리둥절해진 한국 사람들은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전지구인이 한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문화적 역량이 뿌듯해지는 상황. 정체성의 역규정이다. 이제는 문화산업을 넘어 보다 깊은 문화적 성취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술이다. 대중문화·소비문화 일색이었던 한류가 드디어 예술 영역에서도 불붙기 시작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곱절로 반가운 까닭이다. 실은 남들이 알아주기 전부터 우리 스스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우리는 이미 높은 수준의 예술적 성취를 일군 문화 강국이라는 것을. 그리고 돈 되는 대중문화산업만이 아니라 돈 안 되는 예술문화 또한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중한 정신문화 자산이라는 것을. <김준기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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