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열 박사의 버섯이야기] (1)버섯의 정의

[고평열 박사의 버섯이야기] (1)버섯의 정의
제주는 온화하고 강수량 많아 다양한 버섯 자생
  • 입력 : 2021. 04.15(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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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균핵술잔버섯.

1년 내내 있거나 며칠 새 사라지는 것까지
제주도 오랜 생산지 표고는 유일한 식용
유기물 분해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

식물이나 동물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다양한 종들이 우리가 사는 주변에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3대 생물의 하나이면서 고등균류인 버섯은 아직 낯설고, 또 살짝 두렵다. 독버섯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듣고 자란 탓도 있고, 어느 한 시기에 얼른 나왔다 사라질 뿐 친근해질 시간만큼 우리 곁에 머물러 주질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주도에는 어떤 버섯들이 살까. 자연이 건강하고 생태계의 보고라고 해서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에도 지정돼 있는데, 제주도에 사는 버섯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한라산 저 깊은 골짜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어드메 쯤에는 몸에 좋은 약용버섯과 맛 좋은 식용버섯들이 나고 자라고 있을 것만 같다. 알아두면 좋을 버섯이야기, 한라일보를 통해 만나보자.

자연산 표고.



▶버섯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버섯은 곰팡이, 즉 균류(fungi)에 속한다. 곰팡이 중에서 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번식기관인 자실체(子實體)가 사람의 눈으로 확인 가능한 정도의 크기로 성장하는 것을 균학에서는 '버섯'이라고 정의한다. 자실체(子實體)란 표고나 느타리처럼 우리가 먹는 버섯을 이르는 전문 용어이다. 버섯의 주름살 사이에서 식물의 씨앗에 해당하는 포자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번식하는 번식기관이다.

버섯은 자라기 시작하면 하루나 이틀, 또는 며칠만에 성장과 소멸을 마치는 종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렇게 빨리 성장하려면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장마기를 지나면서 균사가 활발히 성장을 하고 여기저기서 커다란 버섯들이 쉽게 눈에 띄게 된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은 제주도에는 다양한 버섯들이 발생하고 있다.

황금흰목이버섯.

동백균핵버섯.

흰목이버섯.

이른 봄 숲에 가면 숲 속의 생명들은 모두 긴 겨울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딱딱한 버섯이나 늙어 말라버린 버섯 등 곳곳에서 버섯들이 보인다. 운지라고 알려진 구름송편버섯, 잔나비불로초 같은 딱딱한 버섯들은 거의 1년 내내 숲에 있다. 예쁜술잔버섯이나 습지등불버섯, 황금흰목이와 같은 육질이 부드러운 버섯들은 비가 온 후 며칠 동안 발생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머렐이라고 부르며 서양사람들이 요리로 즐기는 야생 곰보버섯도 이 시기에만 난다.

▶식탁의 단골로 오르다

제주도는 오랜 표고의 생산지이다. 버섯 중 유일하게 식용으로 쓰고, 제사에 전을 부쳐 조상에게 올리며, 감기에 걸리면 버섯 달인 물로 치료약으로 쓰던, 쓰임새가 많았던 버섯이다.

아직까지도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버섯이며 4월 즈음, 중산간 숲을 걷다보면 종종 눈에 띈다.

목이와 털목이는 인류가 가장 오랜 옛날부터 재배를 해 온 버섯으로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과 소비량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한다. 제주도에서도 목이와 털목이는 물조래기, 물자랭이 등으로 불리며 예로부터 식용해 왔다.

중국의 옛 농부가 산에 많이 나 있는 버섯을 따다가 먹었더니 맛이 아주 좋았다. 버섯이 날 시기에 맞춰 산에 찾아가기가 번거로웠던 농부는 힘들여 나무를 끌고 와서 집 뜰에 두고 수시로 물을 주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섯이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의 노고가 수포로구나 하고 생각한 농부는 화가 나서 버섯나무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튿날 아침 다시 버섯나무를 본 농부는 깜짝 놀랐다. 밤새 버섯이 가득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때부터 버섯을 인공 재배할 경우에 버섯나무를 쓰러뜨리거나, 망치를 들고 다니며 두들겨 주거나 하는 방법으로 충격을 주게 됐다. 위기감을 느끼면 버섯도 번식에 재빨리 공을 들인다.

곰보버섯.

구름송편버섯(운지).



▶4월에만 만날 수 있다고?

버섯에는 계절특이성과 기주특이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무 때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아무거나 먹지 않는 까탈스런 버섯들이다. 새봄이 막 찾아드는 3월 또는 4월에만 잠깐 얼굴을 보이는 버섯 중에는 동백균핵버섯과 목련균핵버섯, 오디균핵버섯, 갈색균핵술잔버섯 등이 있다. 땅 위에서 작게 자라는 이런 버섯들은 흙을 닮은 색깔과 작은 크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몇 세기를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오랜 시간동안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왔다.

고평열 박사



▶청소부라고요?

혹자들은 버섯을 지구의 청소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버섯은 우리가 쓰다버린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분해할 수 없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치우지 못한다.

버섯은 자연에서 청소하는 게 아니라 죽은 나무나 낙엽, 동물의 배설물과 같은 유기물을 분해해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분해자 또는 환원자라고 불려야 한다.

식물은 생산을 하고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소비를 하고 버섯은 분해해 유기물을 이용하고 남는 무기물은 자연으로 환원시킨다.

버섯이 없으면 건강한 지구도 없다. 버섯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다.

<고평열 자원생물연구센터 대표·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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