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오스카 수상 윤여정 데뷔 55년

한국 최초 오스카 수상 윤여정 데뷔 55년
인연 맺은 감독들과 의리 지키며 변신 또 변신
나이 먹을수록 젊은 창작진과 손잡고 감각 벼려
  • 입력 : 2021. 04.26(월) 13:57
  • 연합뉴스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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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나리' 여우조연상 수상자인 윤여정이 오스카 시상식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돈을 벌려고 연기를 했다. 천재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화려한 시절도 있었지만 결혼으로 공백기를 겪었고, 이혼 뒤에는 다시 생계형 배우가 됐다.

 작품과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일하다 60세가 넘으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서 하는 '사치'를 누리기 시작했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과감한 변신도, 작품을 위한 헌신도 모두 좋은 인연을 맺은 후배 감독들과의 의리가 바탕이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 창작자들과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그는 7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썼다.

 ◇ 천재 감독의 페르소나…이혼녀 꼬리표에 생계형 배우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한양대 재학 중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탤런트 시험을 보라는 제안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1971∼1972년은 최고의 전성기였다. 그에게 여우주연상과 신인상 등을 안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와 '충녀'는 물론, 드라마 '장희빈'으로 인기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과 미국행을 선택하면서 공백기를 갖는다. 13년 만에 이혼한 뒤 홀로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해 TV 드라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연기하면서 '생계형 배우'가 됐다.

 윤여정은 그 시절을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한다"(2009년 MBC '무릎팍도사')고 회고했다.

 ◇ 임상수·홍상수 감독과 칸영화제 진출

 영화로는 김수현 작가가 쓴 '에미'(1985)에 출연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복귀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이었다.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병한 역은 다른 여러 배우들이 거절했던 캐릭터인데 "집수리 비용이 필요하다"며 윤여정이 선뜻 나섰고, 그간의 공백기가 무색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영화로 '절친'이 된 임 감독과는 '그때 그 사람들'(2005) '오래된 정원'(2006),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까지 크고 작은 역할들로 함께 했다.

 임 감독이 유학을 떠나면서 소개해 준 이재용 감독과 찍은 '여배우들'(2009)은 배우 윤여정의 진가와 인간 윤여정의 매력을 확인시켜줬다.

영화 '여배우들'.

 윤여정은 물론,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당대의 '쎈' 여배우들이 실명으로 출연해 실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싸움을 벌이는데 윤여정이 그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는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2012)는 이 감독이 다시 한번 새로운 형식에 도전한 작품이다. 감독이 없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14명의 배우가 보여주는 실제 같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이후 이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했다. 윤여정은 "나이 칠순에 몰라도 되는 세상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도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등 여러 편에 출연했다.

 두 감독의 작품으로 동시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이 두 번이나 된다. 2010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로, 2012년에는 다시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로 영화제를 찾았다.

 ◇ 젊은 창작자들과의 도전·젊은 세대와의 교감

 해를 거르지 않고 출연하며 오래 활동해 온 TV 드라마에서는 김수현, 노희경, 인정옥 등 독보적인 작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빛을 발했던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젊은 창작자들과 손을 잡았다.

 홍상수 감독 작품의 프로듀서로 일해 온 김초희 감독과는 영화 '하하하'로 인연을 맺은 뒤 김 감독의 작품 두 편에 잇달아 출연했다.

 정유미와 함께 출연한 29분짜리 영화 '산나물 처녀'(2016)에서는 미지의 행성에서 남자를 찾아 지구로 날아온 노처녀 순심을 연기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는 주인공 찬실이가 세 들어 사는 집 할머니 역할이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후배 감독을 위해 개런티도 받지 않고 출연했고, 영화는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영화 '미나리' 역시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했지만, 이 영화로 마침내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그는 "독립영화라 고생할 게 뻔해서 하기 싫었다"면서도 "정이삭 감독과는 다시 한번 하고 싶다"며 애정과신뢰를 보냈다.

 스타 PD인 나영석 PD와 '꽃보다 누나'(2013)로 인연을 맺은 이후 '윤식당'(2017∼2018)에 이어 '윤스테이'(2021)까지 70대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참이나 어린 후배들과 함께하지만 군림하지 않고, 재치와 유머를 버무린 어른의 통찰로 젊은 층의 환호받고 있다.

  2015년 배두나가 주연한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센스8'과 최근 촬영을 마친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까지 해외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그는 최근 젊은 세대들이 주 고객층인 쇼핑몰 모델까지 꿰차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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