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우상(偶像)의 거처(居處)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우상(偶像)의 거처(居處)
  • 입력 : 2021. 04.28(수)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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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은 21세기에 이르러 20세기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현상을 모두 밝혀 그 규칙성을 세워놓을 수는 없다.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조차 상식과는 다른 일들을 흔히 접하게 되고 합리적 추론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한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지를 생각하려면 몹시도 우울하고 불쾌해진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모세가 이집트의 폭력에 시달리던 군중을 이끌고 탈출을 했으면서도 군중들의 혼란과 타락을 바라보면서 가졌던 갈등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홀로 시나이 산에 올라 지도자로서의 그 해결 방법을 궁구했음은 물론이다. 신의 계시든 현실인식에 의한 깨달음이든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 둘을 가지고 내려와서 율법으로 정하고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록 체벌에 의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혼란과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모세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우상은 개인이나 집단이 추구하는 탐욕의 상징이다. 탐욕이 질주하면 무질서를 거쳐 타락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생각해보면 우상은 베이컨의 ‘새로운 논리학(Novum Organum) (London, 1620)’에서 언급했던 오류와 닿아있다.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그리고 극장의 우상에서 제시한 오류다. 우상은 자기합리화의 맹목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현실의 실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초월적 존재에 기대어 평정을 찾으려는 위안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해, 고내리 바닷가 언덕 위에 우뚝 세워놓은 비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었다. 제주인들이 세운 것일까, 아니면 정부가 지원을 해서 세우게 한 것일까. 제주를 초토화했던 인물에 대한 행적을 왜 제주인들은 그렇게 떠받들게 된 것일까. ‘애월읍경은 항몽멸호의 땅’이란 비문 왼쪽에 최영 장군, 그리고 오른쪽에는 김통정 장군의 석상을 세워놓았다. 흉년으로 몹시도 힘들던 시기에 순박한 탐라인들을 끌어들여 피를 요구하고 죽음으로 내몰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는 제주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떠받들어야할 우상(Idol)이란 말인가.

귀덕 바닷가(복덕개)에는 높이 3m는 족히 될 듯한 석상들을 세워놨고 설화 속의 영등철이 되면 하루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역 유지, 그리고 힘 깨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축제의 이름으로 보내곤 한다. 그러면서 그 석상을 어루만지며 ‘영등할망’이라고 부르짖기도 하고 큰심방을 따라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그 깨끗한 바닷가로 중국발 괭생이 모자반이 밀려왔을 때 그 사람들 몇이라도 모여 청소를 했던 적이 있었을까.

제주는 신화를 낳은 곳이 아닌가. 신화를 내세우기는 하면서 그 신화를 낳은 제주를 방치하는 걸 보는 일은 참 따분하다. 제주인들의 피를 요구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추구했던 이들의 석상을 세우고 추모하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부르짖는 이들에게는 어떤 역사 인식이 자리한 것일까. 이토록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소는 귀한 존재였기에 금송아지를 모셨다고는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나는 우상(偶像)은 허수아비의 뜻일 뿐이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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