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이맘 때 쯤 도지사 후보 자격으로 강정마을을 찾은 원희룡 제주지사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주민들은 '국회의원 12년 동안 한 번도 마을을 찾지 않고, 우리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다가 지사 선거에 나가니 이제야 찾아오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구럼비가 산산조각나고, 수많은 주민들이 경찰에 잡혀갈 때도 얼굴 한번 안 비치던 원 지사가 갑자기 언론사 카메라를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곱게 비칠리 없었다.
원 지사의 다음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대화하러 왔으니 내몸에 손대지 말라"며 두눈 꼭 감고 수분간 아무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원 지사의 첫 인상이다. 여느 정치인이라면 주눅이 들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인사치레라도 할텐데, 원 지사는 그 순간에도 당당했다.
그러고보니 재임 기간 내내 고개 숙인 원 지사를 좀처럼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도정질문이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도정을 향한 성난 비판이 쏟아질 때도 원 지사는 고개를 꼿꼿이 세워 맞섰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이겨내고 차지한 전국 1등, 승승장구 한 선거 이력 등 남한테 평생 한번 져본적 없을 것 같은 지금의 원 지사는 그 고집스런 자존심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원 지사에게도 고개 숙여 사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원 지사는 조만간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다. '제주지사 자리가 대권 도전을 위한 발판이 아니냐'는 숱한 의구심에도 '도민만 바라보겠다'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러니 원 지사는 응당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
이런 처지가 아이러니 할 것이다.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 할 자리에서 사과를 해야한다니. '차라리 그런 약속은 하지 말 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해서 사과를 패스할 수 없다. 그런 좀스러움으론 대권 도전이 가당치도 않으니 말이다.
<이상민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