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었을 밤의 기억들고민과 불안 속 ‘나’를 보다
“깊은 절망 뒤 삶이 절실해져
걱정의 30%는 이미 지난 일”
철학은 실재·허상계의 다리
생각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힘
우연히 집어 든 니체의 잠언집 하나로 철학의 길을 걷게 된 한문학도인 저자가 잠 못 드는 밤에 건네는 다정한 위로의 책이다. 이성적 사고를 요구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감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를 권하는 이유가 들어있다. 매일 같은 고민과 불안 등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를 둘러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저자 민이언, 출판사 쌤앤파커스>
▶대담자
▷김미자 :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유현수 : 독서동아리 '책낭' 대표
▷허정선 : 독서동아리 '책낭' 회원
▷박선애 : 놀이와 교육을 병행한 영어 강사
독서동아리 '책낭' 회원들이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김미자, 허정선, 유현수, 박선애씨. 사진=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제공
▷김미자(이하 김) : 책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은?
▷유현수(이하 현수) : 철학 입문자를 배려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나 만화를 접목해 철학이 주는 무게감 대신 예시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좋았다. 동양철학을 가미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허정선(이하 정선) : 프롤로그의 '잠 못 이루는 당신을 위한 철학의 위로'라는 소제목에 맞게 분야별로 '지난 일이 자꾸 떠오르는 밤', '이유 없이 불안한 밤' 등 누구나 겪었음 직한 밤의 기억을 친절하게 풀어서 철학과 접목해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 밤이 있었지' 하며 지나온 시간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김 :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 있다면, 이유는?
▷현수 : '실재계에 대한 각성이 찾아오는 계기는 주로 절망을 통해서이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깊은 절망을 겪고 난 후에 진리가 더 잘 보이기도 하고,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해 물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결국, 절망을 통해서 삶이 더 절실해지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정선 : 우리가 하는 '걱정'의 30%는 이미 지나간 일,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22%는 별 게 아닌 사소한 일, 나머지 8%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와 이 책의 의도인 문제해결의 키워드가 결국은 그 불안을 우리 안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박선애(이하 선애)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그러나 사라지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있을 때 무심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까, 더 소중하게 다가오더라, 엄마가 돌아가시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모든 걸 엄마에게 의지했던 내 삶이 엄마의 부재로 인해 많이 힘들었고, 참 많이 의지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어른이 아니었더라. 이젠 오롯이 내 몫이라는 생각에 아쉬움도 있지만, '엄마가 옳았다'라는 걸 느끼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김 : 정보사회의 문제점은 공유되는 정보가 많다는 점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삶을 살아가는 행위들에 관한 생각은?
▷현수 : 하늘이 무너져야 솟아날 구멍이 있다. 절박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타자의 시선보다 내 안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불편한 타자의 시선은 무시하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불편함을 없애게 된다.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선 : '식당에 홀로 앉아 밥을 먹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삶에서 내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데, 잘 안 되면 화가 난다. 방법은 간단하다. 나를 변화시키면 세상이 바뀐다. 내가 바뀌는 게 우선이다. 타자의 시선도 내 생각의 변화에 달렸다고 본다.
▷선애 : '성공을 원한다면 누구에게 들은 남의 이야기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결국은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행동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김 : ''주역'이 역술인지 철학인지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뽑은 점괘가 나의 운명이라는 논리가 아니라 나의 운명이 그 점괘를 뽑았다는 논리'라고 했는데 그에 관한 생각은?
▷현수 : 니체가 말한 '의지'와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동서양이 다른데 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동의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의지를 갖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벗어버리고 싶은 껍질 중의 하나가 '의지박약'인데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책 모임도 의지가 필요한데, 오랜 시간 경험에서 나온 좋은 영향력에 관한 결과가 결국은 내 의지를 강화해 준 것 같다.
▷정선 : 의지가 있다는 건 한계를 인정하는 거다. 보이는 모습들도 본인의 의지 때문에 선택된 결과다. 의지라는 게 정해져 있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씻는 것도 의지가 필요하고, 운동하는 것도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를 습관으로 돌려버리면 굳이 의지를 사용치 않아도 된다. 습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힘들다. 습관이 되거나 즐거움이 되면 의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선애 : 선택적 반복이 의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즐거움이 동반돼야 가능하다. 쉽진 않지만, 환경이 바뀌면 의지를 갖고 해야 하는 것들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김 : 저자는 철학적 화법의 겉멋에 매몰되어 '철학을 위한 철학을 써 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순간순간 돌아본다'고 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은?
▷현수 : 불안을 위로하고자 신앙이 생겼고 신앙에서 파생된 게 철학이다. 철학을 하면 껍데기를 깨고 나와 허상계에 살지 않고 실재계에 살게 된다. 허상계와 실재계에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철학이다. '정성을 다하면 보인다'라는 말과 통한다.
▷정선 : 철학은 생각을 이끌어주며, 생각을 안전하게 유도해주는 힘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보는 게 전부처럼 느껴지는 세계에서 각자의 섬 안에서만 살고 있다. 결국은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각자의 섬 안에서 살게 되는 게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철학이 그런 세상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본다.
▷선애 : 학창 시절 철학은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 정보가 많아서 철학하기 힘든 시기라고 생각된다. 걸러내지 못하는 사회에서 입맛에 맞는 사람과만 만나고, 생각보다는 필요를 공유하는 사회인 것 같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김 : 끝으로 독서 모임의 유익함이라면?
▷현수 : 어딘가에 기대고 싶을 때,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옳은 일. 선한 영향력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고 나면 보람이 있고,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행위가 되었다.
▷선애 : 제주에 이주하고 아는 사람 없어 3, 4개월을 혼자 다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여러 모임을 찾던 중에 독서 모임을 알게 되었다. 이주 3년 차인데 제주에서 사는 삶의 즐거움의 3분의 1을 이 모임에서 얻는다.
<정리=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독서 동아리 '책낭'
2018년 1월에 시작됐다. 제주에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 대부분인데, 갈등 없이 얘기가 잘 통한다. 회원은 현재 9명이 참여하고 있고, 모임은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오후 1시에 갖는다. 모임을 통해 책과 토론으로 내 일상과 운명을 깨부수는 질문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