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9)감귤농장

[황학주의 제주살이] (9)감귤농장
  • 입력 : 2021. 11.09(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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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은 소나무 방풍림에 싸여 있다. 눈에 익은 곳이라 모노레일이 지나던 지하터널을 걸어나가 반대편 귤밭으로 올라가자 흰 벽에 환하게 창을 낸 카페가 눈에 띈다. 감귤나무 가지들에 휘어지도록 감귤이 달린, 밭담을 두른 귤밭 가운데 카페 '귤곳간'은 있다. 한쪽으로 달아낸 공간은 유리창 대신 비닐 창을 둘렀고 지붕 또한 비닐을 덮은 다음 그 밑에 어긋나게 두 장의 그늘막 미색 천을 펼쳐놓았다. 제법 귤밭과 어울리는 자신만의 공간이 된 것 같다. 귤밭과 귤밭 주변에 있는 것, 혹은 귤밭에 있는 자의 내부에서 끌어올려진 것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과원을 이룬다.

이 농장 안주인이 내게 시를 배운 제자이고, 공간이 꽤 달라졌다고 해서 구경을 왔다. 여기 있는 곤충전시관, 동물원, 카페, 모노레일, 생태관 같은 시설물들의 지어진 순서를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매우 오래된 감귤농장이라는 것과 농장 부부의 엄청난 노력이 따랐을 것이라는 건 주변을 둘러보면 금세 알게 된다.

귤을 한 바구니 따 담고 소리쳐 누군가를 부르는 여인이나 폰카를 들고 귤밭 사이 빈 공간을 찾아다니는 젊은 연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감귤식초차와 빵 하나를 시켜놓고 그걸 보고 있자니 농장 안주인이 예의 포근한 웃음기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모습으로 앞에 나타난다. 피곤한 기색이지만 평온한 시선으로 특별히 나와 아내를 맞이해 준다.

5월에 카라향을 따러 왔었는데, 지금은 노지귤 철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제 생산, 가공, 서비스까지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자체 판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감귤농장의 현주소라고 한다. 농사일의 어려움은 ‘옛날’과 ‘최근’의 구분인 잘 안 돼 어떤 일이 몇 십 년 전을 가리키는지 며칠 전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렇지만 끝끝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그녀는 덧붙인다. 귤밭뿐 아니라 농장 일을 하며 흘러간 시간들과 그 모든 잔재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자산일 것이다.

아열대 식물이라는 희소가치와 머나먼 고도에서 나는 과일이라는 귤의 비일상적인 아우라 때문에 귤은 오랫동안 중앙권력에 의해 가혹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그 먹이사슬의 밑바닥엔 제주도 백성이 있었고, 이같은 현실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며 근 천 년 이상 제주도민을 괴롭혔다. 세도가들의 욕망을 부추기던 이 진귀한 과일은 이제 종다양성과 최고의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재배가들의 신념에 의해 현대인의 식탁을 새롭게 물들이지 않을까.

나는 이 농장의 식초를 좋아하고 식초 발효실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시큼한 냄새를 좋아한다. 그것은 시간을 버티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그 냄새를 뒤로한 채, 귤밭 한쪽에 바람과 비에 손상되고 까마귀나 참새에 쪼아 먹힌 못생긴 감귤 몇 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과원을 나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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